주님이 우리를 위해 고통을 겪으시고 죽으시지 않았다면, 죄가 그토록 치명적인 독이라는 것을 우리 가운데 누가 알았을 것인가? 그분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가운데 누가, 죄가 그토록 끔찍한 것임을 발견하였을 것이며, 아니면 어떤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인가? 그런 경우였다면, 회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이며, 용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회개는 ‘파토스’(παθός: 영어로는 passion. 곧, 악으로 기우는 온갖 인간적 욕망이나 격정. 반대는 무정념[無情念, apathy]. 루마니아의 신학자 두미뜨루 스떠닐로아에는 파토스를 '유한한 사물과 인간에 대한 끝없는 집착'이라고 말했다. '예수기도, 성령체험' [정교회출판사, 2017] 69-70쪽 참조)와 관련되어 있고, 용서는 하느님의 은총을 통한 부활과 연관된다. 회개로써 (죄지은) 옛날 자아는 죽고, 무덤에로 이끌려간다. 용서로써 새로운 자아가 태어나 새 생명을 얻는다.
- 성 니꼴라이 벨리미로비치(1881-1956, 세르비아의 주교, 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