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 64

자연환경의 보호를 위해 기도하는 날

2024년 바르톨로메오스 세계총대주교의 교회년도 시작 메시지 새 로마-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이며, 세계 총대주교인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스는만물의 창조주이신 우리 주 하느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은총과 평화와 자비가 온 교회에 충만하게 임하길 빕니다.  주님 안에서 존경하는 형제 성직자들과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세계 총대주교청의 거룩한 공의회가 매년 9월 1일을 교회년도의 시작일이자 자연환경의 보호를 위한 기도일로 제정한지 35년이 지났습니다. 이 복된 새로운 제안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위대한 교회’​​의 다차원적 생태 활동은 “지구적 비상사태”를 초래한 기후변화 현상, 아니, 이 기후위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태운동의 기여..

삶의 목적 3

우리 삶의 주요 목표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위해 하느님의 아들이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으며, 이는 우리로 하여금 죄로 타락함으로써 잃어버린 신적인 친교로 다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성부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게 되며, 이로써 우리의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 성 테오판 은둔자(1815-1894, 러시아)

삶의 목적 2

거룩함을 얻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수도사들만의 과제가 아닙니다. 세상에 살며 온갖 종류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처럼 가족이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거룩함에 이르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함과 거룩함에 대한 명령은 수도사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오누프리 주교순교자(+1938, 폴란드)

삶의 목적 1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거룩하게 되라는 명령과 (어떤 행동을 장려하기 위해 주어지는) 특별한 우대책(優待策, 인센티브)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만일 당신이 (영적) 투쟁과 거룩하게 되려는 희망이 없이 살아간다면, 그때 당신은 본질적인 요소는 없이 단지 이름만 지닌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함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주님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런 사람은 영원한 축복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믿을만한 이야기입니다.(디모테오 1서 1:15) 하지만 만일 우리가 죄인으로 남아있으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인(聖人)이 되는 수단을 제공하심으로써 ..

동방과 서방

동방과 서방 서방은 혼란과 아수라장의 격통 속에 있고, 반면에 동방은 운명에 대한 체념과 복종 속에 있다.서방은 계속해서 지식의 나무를 포식하면서 점점 더 지식에 대한 허기를 느낀다. 동방은 생명의 나무 아래 앉아 있지만 그 열매에 다다를 수가 없다.서방은 조직에 대한 열광과 조증(躁症 mania: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들떠 병적일 정도로 행복감에 심취해 있는 상태)이 있고, 동방은 유기체에 대해 열광한다.서방은 끊임없이 외적인 일을 벌이는 반면에 그 내적 가치는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 동방은 부단히 그 내적인 가치를 일구는 반면에 외적인 것은 쇠락하여 사라져간다.서방은 가공할 바벨탑을 쌓아올리는데, 그러나 이 탑이 깎아서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들어진 까닭에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곧 무너지고 말 것만 같다. ..

동방과 서방 2024.07.23

조성 (調聲: 소리를 낼 때에 그 높낮이와 장단을 고르는 것)의 차이

동방은 서방에서 그토록 사랑받는 고백들과 회고록과 자서전이 낯설다. 조성(調聲: 소리를 낼 때에 그 높낮이와 장단을 고르는 것)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동방의 시선은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전혀 머물지 않으며, 도리어 자기겸비의 베일 뒤를 꿰뚫고 들어간다. 십자가와 거룩한 마음[성심(聖心)]의 서방 신비주의에 대응하여 봉인된 무덤과 그로부터 영원한 생명이 솟아오르는 동방의 신비주의가 있다. - 폴 에브도끼모프(1901-1970,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러시아인 정교 신학자)

동방과 서방 2024.07.22

하느님을 알게 된 사람 2

하느님을 알게 된 사람 2 영혼이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이 우리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 곧 가장 가깝고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시는 최고의 아버지라는 것을 분명히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이런 사랑이 우리 영혼 안에 있게 될 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 영혼에 기쁨을 가져옵니다. 하느님을 완전히 알게 된 영혼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며,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 앞에 한 나라를 가져다 놓더라도 그는 그 나라를 가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랑이 너무나 큰 달콤함과 기쁨을 그에게 주기 때문에, 왕..

하느님을 알게 된 사람 1

하느님을 알게 된 사람 1 영적인 삶을 사는 한 그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모든 것 속에서 하느님을, 그리고 모든 현상과 징후들 안에서 하느님의 힘과 능력을 보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지 그는 자신이 하느님 안에 있다는 것과 모든 것에서 그분께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이 육신적인 삶을 산다면, 그런 사람은 그저 육신적인 일을 할 뿐입니다. 그는 어떤 것에서도 하느님을 보지 못하며, 더구나 하느님의 신적인 힘이 가장 놀랍게 드러나는 것들 속에서조차 그분을 보지 못합니다. 그는 모든 것 속에서 그리고 어디서나, 어느 때든지 육신과 물질을 볼뿐입니다. “세상에 저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시편 35:2) 성 요한 크론스타트(1829-1909)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4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4 누구라도 주님의 종이 된 사람은 자기 주인만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흔히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은 불신(不信)이 낳은 딸입니다. 거만한 영혼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노예입니다. 본질적으로는 희망을 갖고 있지만,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는 상태에 이르러 어둠을 두려워하고야 맙니다. - 성 요한 끌리마코스(579-649. 시나이의 수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