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총대주교의 2024년 부활절 메시지
새 로마-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이자 세계총대주교인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스는
영광 속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와 자비가 온 교회에 임하길 기원합니다.
지극히 존경하는 형제 주교들과 축복받은 자녀 여러분,
우리는 기쁨으로 또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룩한 대사순절의 경주를 마친 뒤, 참회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고난주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저승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기쁨으로 경축합니다.
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것은 죽을 운명에 처한 모든 인류가 함께 부활하는 것이며, 모든 일들의 완성을 미리 맛보는 것이며, 또한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되는 것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형언할 수 없는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며, 교회의 성사를 통해 거룩하게 되며, “우리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 준” 빠스카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를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 생활의 정수(精髓)로서,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으로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가까운 것보다 더 우리에게 가까우신 그리스도의 현존으로서 받아들입니다. 빠스카 때 정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참된 자아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종말을 향해 가는 모든 일들의 움직임에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베드로전 1:8), “빛의 자녀로서, 대낮의 자녀로서”(테살로니키전 5:5) 통합됩니다.
정교회 생활의 중심적인 특징은 부활의 환희적 리듬입니다. 한 철학자는 정교회 영성이 “침울”하며 “음침”하다고 잘못 묘사해 왔습니다. 이에 반해 서구인들은 빠스카 경험의 의미와 깊이에 대한 정교회의 정교한 통찰력을 옳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 신앙은 부활에 이르는 길이 십자가를 통과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정교회 영성은 ‘십자가 없는 부활’이라는 유토피아적 생각이나 ‘부활 없는 십자가’라는 비관주의를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교회의 경험에서 악은 역사의 마지막을 차지하지 않는 반면, 부활에 대한 믿음은 세상에 있는 악의 존재와 악으로 인한 결과에 맞서 싸우는 동기가 되어 강력한 변모의 힘으로 작용합니다. 정교회의 자기 인식에는 악에 굴복하거나 인간사 발전에 무관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오히려 역사의 변화에 대한 교회의 기여는 신학적 기초와 경험론적 기반을 갖고 있으며, 교회를 세속과 동일시하는 위험 없이 전개됩니다. 정교회 신자는 세속적 현실과 종말론적 완성 사이의 대립을 인식하며, 세상의 어떤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을 결코 무의미한 것으로 여긴 적이 없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교회를 세상에 무관심한 채 고립되지 않도록 지켜주었고, 또 세속화되지 않도록 지켜주었습니다.
우리 정교회 신자들에게 우리 신앙의 모든 신비와 경험론적 풍요는 빠스카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향료 가진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고 있는 젊은이를 보고”(마르코 16:5 참조) “놀랐다”는 것은, 존재론적 경이로움의 경험으로서 우리의 신앙 경험의 광대함과 본질을 특징짓습니다. “그들이 놀랐다”는 것은, 우리가 접근할수록 더욱 깊어지는 신비 앞에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신비에서 지식으로의 여정이 아니라, 지식에서 신비로”의 여정입니다.
신비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 본성을 경험론적으로 감소시키는 반면, 신비를 존중하는 것은 우리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줍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우리 자유의 가장 깊고 확고한 표현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최고의 신성한 선물, 즉 은총에 의한 신화(神化)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유의 시작일 것입니다. '부활을 경험한 교회'로서 정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와 길과 목적이 되는 '진정한 자유'의 공간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자유를 전하는 기쁜 소식이고, 자유의 선물이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나라의 “영원한 생명”에서 “자유를 함께 누리는 것”에 대한 보증입니다.
존경하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누는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가득 안고, 꺼지지 않는 영원한 빛으로부터 빛을 받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며, 이 “선택받은 거룩한 날”에 어려운 상황에 있는 우리 모든 형제자매들을 기억하면서, “죽음으로 죽음을 멸하신” 평화의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세상을 평화롭게 해주시기를, 또 모든 선한 일과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밝혀 주시기를, 가장 큰 기쁨에 넘치는 인사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를 외치며 기도합니다.
2024년 거룩한 부활절에
부활하신 주님께 여러분 모두를 위해 열렬히 간청하는
† 바르톨로메오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세계총대주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환경의 보호를 위해 기도하는 날 (2) | 2024.08.31 |
---|---|
2024년 대사순절 설교 (0) | 2024.03.21 |
2023년 대사순절을 시작하는 설교 (0) | 2023.02.25 |
2022년 성탄절 총대주교 회칙 (2) | 2022.12.22 |
2022년 새 교회연도 시작에 즈음한 말씀 (0) | 2022.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