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우리

안전한 때는 결코 없습니다

ttoza 2020. 9. 14. 21:07

 

 

안전한 때는 결코 없습니다

 

정교회에서 성찬예배때 신앙의 신조로서 니케아신경을 고백하기 바로 전에 사제나 보제가 문과 문...”이라고 가락을 넣어 읊조립니다. 이 말은 교회의 초기를 생각나게 하는데, 이때는 외부의 침입자들(당시에는 로마의 군인들)이 들어와서 교인들을 찾아내 붙잡거나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 교회의 문들이 닫힌채로 잠겨있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몇백년뒤 이슬람교인인 터키인들의 치하에서 공적으로는 이슬람교인으로 살지만 실제로는 정교 그리스도인인 숨겨진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집안 바닥에 있는 비밀스런 문 아래나 또는 알려지지 않은 동굴 속에 숨겨진 교회의 성찬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런 장소들이 들키게 되면 노인에서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하곤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몇백년뒤 공산주의 정권 아래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회색빛의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촌에서 서로 몰래 만났으며, 이럴 때면 사제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채(만일 가족이 붙잡일 경우에 이는 부모 입장에서 무신론자인 공산주의 당국에게 적당히 둘러댈수 있는 변명이 되는 것이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온 어린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곤 하였습니다. 또한 밤에 은밀히 이루어지는 성찬예배를 위해 몇 안되는 교인들이 도시나 마을의 바깥에 모였고, 감시의 눈을 번뜩이는 지역의 정부당국자들을 피해 멀리서 모셔온 사제가 그 예배를 집전하였습니다. 이 모든 경우에 만일 발각된다면 곧바로 처형되거나, 아니면 더 나쁘게 집단수용소에 갇혀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을 교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주일이든 축일이든 정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날보다도 전혀 더 안전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사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자체가 결코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의 로마 주변에 있는 지하무덤(카타콤)에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은 오십만명 이상의 순교자들 유해가 남아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과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언제나 위험한 일이었으며, 따라서 마찬가지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영원히 그러할 것입니다.

 

-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해밀튼(Hamilton)에 있는 정교회성당 사제 지오프리 코르츠(Geoffrey Korz)의 글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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