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존경하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우리는 기도와 금식으로 거룩한 대사순절의 경주를 달려왔고,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구원을 주는 수난에 도달했으며, 마침내 오늘 그분의 찬란한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경험은 정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입니다. 우리는 부활대축일과 부활축일기간만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지는 않습니다. 매 주일과 평일의 모든 성찬예배에서도 이 빛나는 부활을 경축합니다. 모든 차원에서, 다시 말해 거룩한 예배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우리의 삶과 증언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부활의 정신을 담고 있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승리와 그분의 영원한 왕국에 대한 기대로 약동합니다.
사람은 삶의 마지막 순간만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해서 늘 죽음을 직면하며, 이 죽음의 공포와 불가피성은 혼자서는 결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삶이 “죽음을 향한 여정”이요 그것을 피할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은 어떤 경우에도 삶의 인간화나, 또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책임성과 관심의 증대로 이끌지 못합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이 죽음 때문에 인류는 움츠러들고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은 외면한 채, 아무 제약도 없는 자기실현의 거짓 담론과 “내일이면 죽게 될 터이니, 먹고 마시자”는 식의 비루한 괘락주의 속에서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와 절망에 빠져 들게 됩니다. 과학과 사회, 정치적인 활동, 경제적 발전과 번영은 이 총체적 난국에 탈출구를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인간이 창조한 것은 무엇이든 죽음의 오명을 담고 있고, 그것 자체가 또한 구원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결코 우리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 수 없습니다. 영원을 향한 열망은 세상의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감추어질 수 없으며, 생명의 연장이나 거짓 낙원의 약속으로 충족될 수도 없습니다.
정교회는 현대의 합리적 인간에게 부활의 복음이라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우리 정교인들에게 빠스카는 단지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도 다시 태어남을 경험하는 사건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하시는 경륜의 종말론적 성취를 미리 맛보는 것이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충만한 실존이야말로 하느님 은총의 선물임을 압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은 변모되고, 하느님과 같아지는 신화를 향한 여행으로 바뀝니다. 사도 바울로에게 그리스도인은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데살로니카전 4:13)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생명과 부활”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시고 살아있는 존재”(요한묵시록 1:18)이신 그리스도께 희망을 둡니다.
우리 삶에 그리스도가 구원의 현존으로 함께 하시고 우리가 하늘 왕국에 대한 희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과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고 살아갈 때, 그것은 세상 속에서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힘으로 기능하고 실현됩니다. 현대 문명이 인간을 역사의 창조자로 평가하고 확립하기 전에도 이미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동역자”(고린토전 3:9)라 불렸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정교회가 내향적이어서 비세상적이고 역사와 문명에 무관심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교회의 자기 인식뿐만 아니라 교회의 사회적이고 박애적인 과업에 대한 완전한 오해입니다.
존경하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빠스카는 단지 정교회의 가장 위대한 축일이요 경축행사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부활은 우리 신앙 전체요, 우리의 교회적인 삶 전부이며, 정교회의 문화 전체입니다. 이 고갈되지 않는 샘은 우리 정교회의 종말론적 삶과 증언의 원천이고 양분입니다. 부활 안에서 또 부활로부터, 우리 신자들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알게 되고, 세상 속에서 이뤄야할 우리의 소명과 사역의 내용과 방향을 분별하며, 우리의 자유가 지니는 참된 의미와 진리를 발견합니다. 땅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신 그분은 지옥의 문과 죽음의 권세를 멸하시고 인류와 온 피조세계의 해방자로서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인간은, 자유가 토대이고 길이고 종착지인 “신화의 공동체” 즉, 교회와 연합됨으로써 바로 이 자유라는 선물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도록 초대받습니다. 그리스도가 주신 선물인 이 자유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에페소서 4:15)으로, 또한 친교와 연대의 사건으로 경험되고 표현됩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여러분의 욕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갈라디아서 5:13) 교회 안에서 우리는 끝없이 지속될 하느님 왕국의 날에 있을 “공동의 부활”을 바라보며, “부활의 길 위에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품고 깨끗한 마음으로, 우리는 “모두에게 생명을 주신” 부활하신 주님께,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계시는 하느님께,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의 창조주요 구속자시며 모든 은총의 선물을 베푸시는 주님께, 그분의 구원을 주는 부활의 빛으로 우리 삶 전체를 비춰주시길, 우리 모두에게 기쁨의 충만과 구원의 모든 선물을 베풀어주시길, 그리하여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고 하늘보다 높은 이름이 온 땅에서 찬미되고 찬양받으시길 간구하면서 기쁨에 찬 부활의 인사를 외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2019년 부활절
여러분 모두를 위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뜨겁게 중보의 간구를 드리며
✝바르톨로메오스 콘스탄티노플의 세계총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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