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오스 세계총대주교

2022년 대사순절 설교

ttoza 2022. 3. 6. 23:46

 

 

새 로마-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이자 세계총대주교인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스는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의 기도, 축복, 용서와 함께 하느님의 자비로 온 교회에 임하길 빕니다.

 

 

주님 안에서 지극히 존경하는 형제들과 축복받은 자녀 여러분,

 

육체적, 영적 단련과 금욕 투쟁의 경기장인 거룩한 대사순절의 장엄하고 복스러운 기간으로 우리를 다시 인도하신 성삼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훈련과 투쟁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성대주간과 생명을 주는 주님의 부활을 향한 여정에 겸손으로 우리 자신을 준비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금욕적 수련은 그저 거룩한 대사순절만의 특징이거나, 수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관심사와 의무가 아니며, 그리스도교적 정신에 가해진 외적 영향의 결과이거나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있는 이질적인 요소도 아닙니다. 금욕주의는 바로 그리스도교적 실존의 핵심적 가치이며 교회의 생명에 속합니다. 그것은 신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부르심이며, 우리의 삶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현존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비인격적이거나 접근할 수 없는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느님의 사랑, 그리고 은총과 자유가 충만한 성령의 친교를 드러낸 육화하신 말씀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느님의 강복하심과 특별히 심오한 경험으로 가득찬 거룩한 대사순절은 교회 생활 전체의 보물과 진리를 역동적으로 표현해주고 드러냅니다.

 

신자들의 삶에서는 그 어느 것도 부분적이지 않으며,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삶은 전체적인 것이며,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회개, 겸손, 기도, 금식, 선행 등 이 모든 것들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신자들이 하늘 왕국의 종말론적 신비인 교회의 성체성혈 성사로 향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금욕적 투쟁은 출발점이며, 우리를 가장 거룩한 곳(지성소)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전통에서 금욕주의를 위한 금욕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금욕적 수련은 항상 지속되는 여정이며, 그것은 교회의 한 부분이 될 때, 그리고 신성한 신비의 성사들과 친교를 나누도록 우리를 인도할 때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비의 성사들과 친교를 나눔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는  하늘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교회의 움직임에 통합됩니다. 이에 대한 한 예로서, 대사순절의 다섯 번째 주일에 기념하는 이집트의 마리아 성녀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성녀는 40년 동안 혹독한 금욕적 투쟁과 끊임없는 기도를 한 후에, 거룩한 친교인 성체성혈성사가 생명의 원천이자 불멸의 약임을 잘 아는 상태에서 조시마 성인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정교회의 거룩한 공의회(크레테, 2016)는 금식을 위대한 영적 위업이며 정교 신앙의 금욕적 이상을 탁월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묘사하였고, “참된 금식은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신성한 예배에 참여하는 것과 특별히 거룩한 감사의 성찬예배에 참여하는 가운데 그 절정을 발견한다고 강조합니다. (금식의 중요성과 오늘날 금식을 지키는 것1, 3)

 

거룩한 성체성혈 성사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정교 영성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우리는 신자로서 한 몸이 되고, 다른 이들과 친교를 나누고, 생명의 공동체가 되고, “공동의 선이신 구세주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의 구원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금식은 공동체적 경험인 교회의 규칙에 굴복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대사순절은 교회를 성화(聖化)와 신성함의 장소이며 길로서, 또한 종말론적인 왕국 안에서 생명과 완전한 기쁨의 충만함, 그 찬란한 빛을 미리 맛보고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형상으로서 발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대사순절을 부활절로 향하는 여정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경험을 통해서든 신학적 이해를 통해서든 거룩한 대사순절의 정신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금식의 전체 기간 동안 생명에 대한 부활의 인식이 지속됩니다. 우울하고 비관적인 형태의 금욕주의는 그리스도교적 경험의 왜곡된 형태이고, 다가올 은총과 왕국에 대한 망각이며, “마치 그리스도가 한 번도 오시지 않은 것처럼” “죽은 이들의 부활이나 후세의 영생에 대한 희망이 없이 사는 삶입니다.

 

이같은 정신이 초대 교회 때는 부활절 전의 금식 경험이었으며, 당시 예비신자들은 부활절 밤의 성찬예배 때 받을 세례 성사를 준비하면서 사순절 금식을 행했습니다. 훗날, 이 금식 기간이 가진 교육적 성격이 회개의 기풍으로 대체되었을 때에도 '두번째 세례'로서 '회개'의 경험은 보존되었으며, 다시 한번 더 우리를 교회 생활의 부활절 같은 감사하는 충만함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또 성령과 친교하도록 인도하는 실존적인 경향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또한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부활의 기쁨으로 가는 길을 포함합니다.

 

지금 경건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정당한 이유가 없고, 비이성적이며, 공격적인 전쟁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며 자신들의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많은 고통과 죽음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이며 자녀들인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전쟁이 즉시 멈추고 하느님 왕국의 충만한 기쁨을 미리 맛보는 정의와 평화가 찾아오고 확산되도록 자비와 평화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더 열렬히 간청합니다.

 

정교 신앙, 경건함, 영성의 이와 똑같은 구원의 진리는 또한 올해 성대주간에 총대주교청에서 거행될 성유(Holy Myrrh) 축성식을 통해서도 강조될 것입니다. 성유 축성식(Eucharist of Myrrh)을 통해 나오는 이 축복되고 신성한 효험이 있는 기름은 새로이 빛을 받은 하늘나라의 시민에게는 견진성사를 통해서 성령의 다양한 선물과 여러가지 은총을 전해주어, 그들이 힘을 얻고, 교회 생활에 참여하게 하며, 무엇보다 거룩한 신비의 성사에서 친교를 나누게 할뿐만 아니라, 또한 세상 속에서 하느님에 의해 영감받은 존재로 있게 하고, 우리 안에 있는 희망과 은총의 선물을 증거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친교의 힘으로서 성령의 성격은 세계 각 지역의 정교회가 봉헌한 재료들을 끓임으로써 성유가 준비되는 방식 속에서뿐 아니라 또한 성찬예배로 모인 회중들 속 그 축복의 장소-교회-와 시간-성찬예배에서 바쳐진 거룩한 예물의 축성 직후-에서 나타나며, 그러나 정교인이 아닌 그리스도인이나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사람이 견진성사를 통해 정교인이 될 때, 성당과 거룩한 제단, 안티민숀을 축성할 때와 같은 또다른 교회의 사용례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는 금식 기간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주님의 부활절로 향하는 우리의 여정이 무사히 완성되기를 기도하면서, 주님 백성들의 금욕적 성취를 항상 축복해주시는 우리 그리스도 하느님의 생명을 주는 은총과 큰 자비가 콘스탄티노플 어머니 교회의 사랑받는 자녀들이자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한 형제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간구합니다.

 

2022년 거룩한 대사순절에

여러분 모두를 위해 하느님께 간절히 간청하는

바르톨로메오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