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총대주교의 2022년 부활절 회칙(回勅)
새 로마-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이자 세계총대주교인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스는 영광 속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 자비가 온 교회에 임하길 기원합니다.
거룩한 대사순절 동안 고행의 경주를 달리며 주님의 거룩한 수난을 경건하게 보낸 우리는 이제 그분의 찬란한 부활의 영원한 빛으로 가득 차서 그분의 하늘보다 더 높은 이름을 찬양하고, 그 이름에 영광을 돌리며, 온 세상에 기쁨을 주는 인사말을 외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정교회 신자들의 신앙과 경건함, 문화와 희망의 핵심입니다. 교회의 삶은, 그것의 그리스도적(신인[神人, divine-human]적), 성사적, 전례적, 영적, 도덕적, 사목적 표현으로 형성되고, 또 그리스도로 인해 도래한 은총에 대한 가르침으로, 우리가 고대하는 “모든 이들의 부활”에 대한 가르침으로 형성됩니다. 교회의 삶은 또 우리 구세주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죽음의 권세의 소멸을 반영하고, 인류가 “악의 종살이”에서 해방됨을 반영합니다. 우리 신앙의 성인들과 순교자들이 부활을 증언합니다. 또 우리 신앙의 교리와 정신, 교회법적 구조와 교회의 운영, 거룩한 성당들, 수도원들, 순례지들, 성직자의 경건한 열성, 수도자가 자신의 소유물과 자신의 존재를 조건 없이 바치려는 마음이 부활을 증언합니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정교회적 신념이 부활을 증언하고, 우리 교회의 전체 생활 방식이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이는 특성도 부활을 증언합니다.
우리 정교인들에게는 부활절을 축하하는 것이 세속적 현실과 그 모순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죽음을 짓밟으신 아담 혈통의 구세주께서 역사의 주인이시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하여” 계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시라는 확고한 믿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진리라는 확실성을 경험하는 것이며, 우리 삶의 토대이고, 실존적 중심축이며 지평선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5) 그 어떤 상황도, 즉 “환난, 역경,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이나 칼”(로마 8:25)도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습니다. 이 확고한 신념은 우리의 창의성에, 또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일꾼”(1고린토 3:9)이 되기를 원하는 우리의 소망에 영감과 활력을 줍니다. 그것은 넘을 수 없는 장애물과 난관 앞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그곳에 항상 희망과 전망이 있음을 보장해줍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필립비 4:13)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면서, 모든 형태의 악은 인류의 역사에서 결국엔 힘을 잃고 승리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광의 주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이 지고한 가치에 대해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우리 시대의 갖가지 폭력과 사회적 불의와 인권의 침해 앞에서 낙심하고 있습니다. 오늘 “부활의 기쁜 소식”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는 외침은 무기들의 무시무시한 소리와, 전쟁과 폭력의 무고한 희생자들과 피난민들의 고통스런 외침과 함께 울려퍼집니다. 이들 가운데엔 죄없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난민의 대다수가 피난간 폴란드를 최근 방문하면서 이러한 모든 문제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우리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경건하고 용감한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함께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와 정의를 박탈당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지지하고 도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 존엄성이 말살되는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침묵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력충돌의 희생자들과 함께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인류로서,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도 전쟁을 뿌리뽑지 못했습니다.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롭고 더 복잡한 문제들을 발생시킵니다. 전쟁은 분열과 증오의 씨앗을 뿌리고, 사람들 사이의 불화를 증가시킵니다. 우리는 인류가 전쟁과 폭력 없이 살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평화의 대리인(중개인, agent)으로서 기능합니다. 교회는 “위로부터 오는 평화”와 “온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평화를 확립하기 위한 모든 인간적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주된 특성은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이들의 투쟁은 하느님의 현존이 이 세상에 실재적이고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늘 왕국인 “새로운 창조” 안에서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필립비 4:7) 평화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세계 총대주교청의 문서 «세상의 생명을 위한 정교회의 사회 윤리(ethos, 기풍[氣風], 정신)»에서 사려깊게 강조되는 바와 같이, “교회는 평화를 위해 순교한 모든 분들을 사랑의 힘, 창조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동안 정립하신 인간적 행동의 이상을 몸소 보여준 증거자로서 기리고 공경합니다.” (44항)
부활절은 자유, 기쁨, 평화의 축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찬양합니다. 그분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부활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 섭리의 위대한 신비에 신실한 마음으로 경배하며 “모든 이들의 축제”에 참여합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우리는 영원히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는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관구에서 존경하는 형제 성직자들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진심어린 부활절 인사를 드립니다. 저승을 물리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베풀어주신 그리스도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여러분 모두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2022년 거룩한 부활절에
부활하신 주님께 열렬히 간청하는
+ 바르톨로메오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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