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란?

간략한 정교회 안내

ttoza 2015. 3. 26. 18:21

Believers inside an Orthodox Church

 

 

 

바실리오스 (곤디까끼스) 수도원장(맨 오른쪽)과 막심 주교(세르비아정교회, 가운데)[2012년, 아토스 이비론 수도원]

 

 

정교성(Orthodoxy)은 무엇인가 증거를 들어 확인하려고 하지 않으나 우리를 매혹시킨다.

정교 신앙은 논증(論證)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자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 바실리오스(곤티카키스) 수도사제(아토스산 이비론 수도원의 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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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를 소개하는 글

 

 

 

차 례

 

1. 정교회란?

2. 정교회의 역사

3. 정교회의 가르침, 예배, 생활

4. 세계 총대주교청

5. 한국정교회의 역사

6.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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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교회란?

정교회(正敎會)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로서 하나인,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입니다. 정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50일째 되던 날, 곧 성령이 강림하신 오순절에 시작되었습니다.(사도행전 2장 참조) 이날 성령을 받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첫 교회가 되었으며 이것이 정교회의 시작입니다.

 

그후 사도들은 시리아, 아라비아,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영국, 아프리카, 인도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렇게 자라기 시작한 교회는 그후 300년 동안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았지만 사도들로부터 이어온 신앙과 가르침을 변함없이 지켰습니다. 그리고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밀라노 칙령을 공포하였고, 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교회는 초기의 천년동안 로마,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등 5개의 관구를 중심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그러나 1054년의 대분열로 말미암아 로마를 중심으로 한 카톨릭 교회와 콘스탄티노플 등 나머지 4개 관구를 중심으로 한 정교회로 나누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천년동안 정교회는 이슬람 세력과 공산주의자들로 말미암아 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교회는 전통적인 정교회 국가인 그리스, 키프로스, 러시아, 게오르기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뿐 아니라 서유럽,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아메리카 대륙,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아프리카, 인도, 일본, 한국 등 전세계에서, 초대교회때부터 전해져 온 신앙과 전통을 굳건히 지키는 한편 활발한 선교와 자선활동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2. 정교회의 역사

그리스도교 시대의 첫 세기 동안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선포한 전도자들이었고, 성 사도 요한을 빼고는 모두 순교하였습니다. 복음서와 서신들을 포함하여 신약성경을 이루는 모든 책들이 1세기에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처음으로 소아시아와 그리스의 주요 도시들, 로마제국의 수도에 만들어졌으며, 아마 북아프리카에도 세워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 념하였다 ......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사도행전 2:42, 44-45)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위의 진술은 대체로 초기의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유대교와 이교(異敎)로부터 많은 개종자들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복음이 선포되는 세상은 ‘온정도 자비도 없는’(로마서 1:31) 곳이었습니다. 잠시 동안 평화가 있었을 뿐, 곧 로마제국 전체에 걸쳐서 거의 300년 동안 박해가 이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신앙과 사랑은 로마제국의 종교와 정치에 하나의 위협으로 비춰졌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때 순교하였습니다.

 

4세기초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종교의 자유가 주어진 이후, 교회와 국가는 매우 가까우면서 서로에게 유익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세기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내부적으로 중요한 발전을 이루는 황금기를 보내게 됩니다. 대 바실리오스, 요한 크리소스톰, 신학자 그레고리 등 위대한 교부들과 슬라브 민족을 복음화한 끼릴과 메토디우스 성인 등이 이 시기에 활동하였습니다. 교회는 또한 이 때에 특별히 아리우스파 이단자들을 물리치면서 성삼위(Holy Trinity)와 그리스도의 육화(肉化)하심 등에 관한 근본적인 가르침들을 확정하게 됩니다. 이 때 열렸던 일곱 번의 세계공의회에서 명백히 선언된 교회생활과 교회의 권위에 관한 표현들은 계속해서 정교회의 중요한 입장을 대변합니다. 초대교회는 획일적이고 자유가 없는 조직이 아니었기에 각 지역마다 자신들만의 신학적 특징과 관습 그리고 예배 전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교회는 신앙의 일치 속에서 함께 공존하였습니다.

 

11세기 중반에 일어난 동방(정교회)과 서방(로마 카톨릭) 교회의 대분열은 신학과 예배와 교회의 권위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파문(Anathema)에서 시작된 분열은 십자군 전쟁기의 콘스탄티노플 약탈(1204년, 제 4차 십자군)과 같은 사건들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었으며, 오래도록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었습니다.

 

15세기에 일어난 회교도들의 침입과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비잔틴 제국에 종말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400년에 가까운 긴 세월동안 오토만 제국의 지배가 이어졌고,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2등 국민으로 취급당하며 온갖 압제와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이 시기에 나왔으며, 교회와 수도원과 학교들이 폐쇄당하고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초에 시작된 독립전쟁으로 정교회는 마침내 이슬람의 멍에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한편 비잔티움 제국의 몰락 이후 500년 가까이 발전하던 러시아는 20세기초에 일어난 공산주의 혁명으로 말미암아 70여년 동안을 폭력적인 무신론(無神論)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제 1차,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에 러시아의 정교인들은 가장 잔인하고 혹심한 박해를 겪었습니다. 근대의 몇 세기동안 정교회 국가들에서는 초대교회 때보다도 더 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정교회는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3. 정교회의 가르침, 예배, 생활

정교회의 가르침은 성경과 전통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정교인들은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신앙과 실천의 토대로 삼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룩한 (교회) 전통 안에서 비로소 형성되었습니다. 곧, 이스라엘 민족과 초대교회의 구전(口傳)과 기록된 ‘기억’(memory)들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정교(orthodox)라는 말은 ‘올바른’(orthos)이라는 말과 ‘믿음’(doxa)이라는 말이 서로 결합된 단어로서, ‘올바른 신앙’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동시에 ‘하느님께 올바르게 영광을 돌리고 예배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정교회의 신앙은 제 1차(325년, 니케아), 2차(381년, 콘스탄티노플) 세계공의회에서 만들어진 ‘니케아 신경’에 가장 간명(簡明)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앙고백은 본질적으로 ‘성삼위적’(trinitarian)입니다. 곧, 만물의 창조주이신 성부 하느님, 참 하느님이시면서 참 사람으로서 육신을 취하시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희생당하시고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 그리고 그 본질에서 성부, 성자와 같은 성령을 고백합니다.

 

이처럼 정교회는 4세기부터 8세기에 걸쳐 열렸던 일곱 번의 세계공의회에서 결정된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가르침들에 다른 무엇을 덧붙이거나 또는 덜어냄이 없이 지금껏 그대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곧, 11세기에 서방과 동방의 교회가 분열되기 전, 하나인 교회로서 1,000년 동안 지켜온 가르침과 전통과 예배를 오늘날에도 그대로 보존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굳건히 서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전한 말이나 써 보낸

글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가르쳐준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데살로니카 2서 2:15)

 

정교회 예배의 주된 초점은 하느님에 대한 경배와 찬양, 그리고 그분과 하나가 되는 친교에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고대 유대인들의 예배의식에서 빌어온 각각의 예배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에 초점을 맞추어 새롭게 다듬어졌습니다. 정교회 예배의 하루는 저녁에 시작되는 데, 이는 창세기의 “이렇게 첫날이 밤, 낮 하루가 지났다”(1장 5절)는 말씀과 같습니다. 만과(晩課), 석후과(夕後課), 심야과(深夜課)가 있은 뒤, 다시 동이 틀 무렵부터 조과(朝課), 1, 3, 6, 9시과(時課)가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루의 시작이 만과라면 하루의 끝은 9시과입니다.

 

이런 예배의 한 중심에 성찬예배(Divine Liturgy)가 있습니다. ‘감사성사’(Eucharist)라고도 하고, '성체성혈 성사', '거룩한 친교'(Holy Communion)라고도 하는 성찬예배는 주요 축일과 매주일에 성당에서 거행됩니다. 성찬예배는 정교인의 신앙과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성찬예배를 통하여 정교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계속해서 경험합니다. 이처럼 전례력에 따라 한 해 동안 드려지는 정교회 예배의 절정은 그리스도의 부활,  곧 ‘빠스카’(Pascha, Easter)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정교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성찬예배 또한 신비의 ‘빠스카’, 곧 부활이며 기도문들은 바로 이 부활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정교회에서도 이른바 ‘일곱 가지 신비의 성사’를 말하고 있지만 이는 17세기 라틴 교회의 영향으로 (또는 현재도 정교회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고정된 것일뿐입니다. 실제로 교부들마다 신비의 성사(의 수와 그 목록)에 대해 서로 달랐었으며, 오늘날에도 '일곱'이라는 (신비의) 성사의 숫자는 정교회 신학에서 특정한 교리적 중요성이 없습니다. 도리어 정교회는 위에서 말한 소위 '칠성사' 외에도 '신비의 성사적'(sacramental) 성격을 지닌 수도자 서원이나 신현축일(1월 6일)의 대성수식, 장례식 등도 신비의 성사(sacrament)로 여깁니다. 또한 농작물과 포도주와 기름을 축복하는 것, 과일과 농지와 가정을 축복하는 것, 자동차나 어떤 물건들을 축복하는 것과 같은 수많은 작은 예식들도 신비의 성사적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믿고 행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이 곧 하나의 일치된 신비, 하나의 위대한 ‘신비의 성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신비의 성사들과 기도와 예배에 참여함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의 정욕과 죄에 대항하여 투쟁함으로써, 또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과 나누는 친교의 세계로 한층 더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4. 세계 총대주교청

세계 총대주교청은 1세기 소아시아의 고대 비잔티움 지역에서 생겨났습니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첫 사도인 안드레아 사도가 이 도시의 첫 주교와 니케아, 할키돈, 이라끌리아 도시들 그리고 그 주변지역의 주교들을 서품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잔티움의 주교는 주후 330년이 지나면서 콘스탄티노플(새로운 로마)의 대주교가 되었는 데, 이 때는 콘스탄티노스 황제가 로마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나서 자신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 곧, ‘새로운 로마’라고 고쳐 명명(命名)할 무렵입니다.

 

콘스탄티노스 황제는 주후 325년에 제 1차 세계공의회를 니케아에서 열었는 데, 이것은 그 뒤로 7차에 걸쳐 열렸던 세계공의회 중 첫 공의회였습니다. 이 세계공의회들은 새로이 형성된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관할 아래 열렸으며,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니케아 신조와 그리스도교의 구조적인 틀을 확립하였습니다.

 

세계 총대주교로서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의 역할은 그리스도 교회가 나누이기 전인 381년과 451년, 콘스탄티노플과 할키돈에서 따로이 열린 제 2차와 제 4차 세계공의회의 교회법을 통하여 더욱 명확히 규정되었습니다. 이 두 차례의 세계공의회로 말미암아 콘스탄티노플 관구는 총대주교청이며 동방의 첫째 관구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총대주교’(Ecumenical Patriarch) 라는 특별한 칭호는 주후 587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공의회를 통해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에게 공식적으로 부여되었습니다.

 

그리스도 교회를 동방과 서방의 두 교회로 양분한 11세기의 대분열이 일어났을 때, 세계 총대주교청은 나누이지 않은 그리스도교의 불변하는 본질적 교의(敎義, dogma)와 실천들에 대한 수호자 역할과 관련하여 동방 교회, 그리고 더 적절하게 말한다면 정교회의 세계 본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의 세계 총대주교는 다른 정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에 의해 ‘동등한 가운데 첫째’(first among equals)인 분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의 세계 총대주교청은 계속해서 세계의 모든 정교회 안에서 영예로운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총대주교이신 바르톨로메오스 성하(聖下)께서는 전 세계의 3억명에 이르는 정교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지도자요 대변자로서 봉직하고 계십니다. 세계 총대주교는 모든 정교회들 속에서 필요한 행동을 시작하고 조정하는 역사적이고 교회법적이며 신학적인 책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5. 한국정교회의 역사

정교회는 1900년 처음으로 러시아 선교사들을 통하여 한국에 전파되었습니다. 그해 1월 러시아인 흐리산토스 쉐헷콥스키 수사신부는 서울에 있는 러시아 정교인들과 러시아에서 근무하던 중 정교인이 된 한국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1903년 흐리산토스 신부는 서울에 성 니콜라스 성당을 마련하고 의욕적인 선교사업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권위있는 가르침, 정교회 예배의 장엄하고 아름다우며 신비로운 분위기들은 많은 한국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나 1904년 일어난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자 일본은 한국에 있던 러시아인들에게 강제출국 명령을 내리게 되었고, 흐리산토스 신부와 그의 러시아인 협력자들은 러시아로 되돌아 가야만 했습니다. 이후 러시아의 한국 선교는 빠벨 이바노프스키 수사 신부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1906년부터 1912년까지는 빠벨 신부, 그리고 1917년부터 1931년까지는 테오도시 페레발로프 신부 등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인 선교사들은 일본의 지배 아래 놓인 한국에 머물면서 이제 갓 싹을 틔운 정교회가 잘 자라나도록 힘껏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지배하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의 정교회 신자들은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는 한편 러시아에서는 1917년에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교회는 더 이상 한국의 정교회에 영적, 물질적 지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1921년 러시아 정교회 공의회는 한국 선교를 포기하고 한국의 정교회를 일본 정교회의 관할 아래 두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한국정교회의 시련은 일제의 강점기를 거치면서 더욱 심해졌고, 감시와 투옥(알렉세이 김의한 신부), 박해가 잇따랐으며 해방이후에는 그나마 있던 교회재산마저 적산(敵産) 가옥으로 몰려 몰수될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리한 소송기간을 거쳐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후인 1962년 12월 법원의 판결로 해결되었으며, 교회는 다시 본래의 재산을 되찾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고비의 과정에서 1950년의 한국전쟁이 터졌습니다. 전쟁 당시 유일한 한국인 정교회 사제였던 알렉세이 김의한 신부는 전쟁이 일어나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때에 옛 정동성당 내의 사제관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끌려가 생사도 모르는 고난의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던 한국인 정교회 신자들은 전쟁중 뿔뿔이 흩어졌고, 일제의 식민지에서 막 벗어나 새로이 피어오르던 한국 정교회의 작은 불꽃은 또 다시 사그라질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전쟁에 종군 사제로 참전한 그리스인 안드레아스 할키오뿔로스 수사 신부의 따뜻하고 사랑어린 보살핌으로 한국인 신도들은 다시 서울에 모일 수 있었고, 성당도 재건되어 많은 사람이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드레아스 신부는 한국을 떠나기 전 신도들 중에서 추천된 보리스 문이춘 교우를 이끌어 1954년 1월에 일본 도쿄에서 사제서품을 받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전쟁으로 고립되었던 한국의 정교회는 1955년 12월의 성탄절에 열린 신자총회에서 콘스탄티노플의 세계총대주교청 관할 아래 들어가기로 결의하였고, 이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의 정교회는 세계 총대주교청 관할 아래 있으면서 미국 정교회 대교구(1956-1970)를 거쳐 오랫동안 뉴질랜드 대교구(1970-2004)에 속해 있으면서 안식하신 디오니시오스 대주교의 영적인 돌봄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보리스 문이춘 신부와 신도들의 노력으로 1967년에는 정동의 옛 성당터를 떠나 현재의 마포 자리에 비잔틴 양식의 성 니콜라스 성당을 건립하고 이전하였습니다.

 

1975년 이후 한국 선교를 책임진 소티리오스(트람바스) 수사 신부의 노력으로 한국의 정교회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소티리오스 신부는 1993년의 주교 승품을 거쳐 2004년 4월 한국 대교구의 설립과 동시에 초대 대교구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부터는 한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을 위해 테오판 김 신부가 러시아에서 파견되어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1998년부터 한국 선교에 참여한 암브로시오스(조그라포스) 수사 신부는 2006년에 보좌주교로 선출되고, 이어서 2008년에 한국대교구의 제 2대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6. 수도원

수도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온전히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만 바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입니다. 수도생활의 중심은 기도와 하느님에 대한 끊임없는 명상입니다. 수도자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전념하고, 자신의 마음에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도록 힘쓰며, 하느님과 하나가 되도록 이끄는 그리스도의 계명들을 지키기 위해 영적인 수련을 부단히 하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수도자들은 영적인 덕을 쌓는 일에 집중하는 한편 일과 봉사, 순종과 침묵, 자신에 대한 성찰과 매일 매일의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일, 신학과 영적인 서적들을 연구하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수도자들은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으나 교회가 믿고 맡긴 물질들의 관리자들이며, 그 물질을 생활의 기본적인 필요에 따라 적절히 씁니다.

 

본래 (에집트, 시리아, 팔레스틴, 가빠도끼아 등) 동방 지역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수도원 제도는 초기부터 수도자들의 생활 방식을 통하여 성령의 활동을 보여주는 예언자적인 사역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정교회 안에서는 수도생활이 뚜렷하고도 분명한 영적 소명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특별히 그리스의 아토스 산(Mt. Athos)과 같은 곳은 여전히 정교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영적인 수원지(水源池)요 중심지로서 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7세기 시리아의 이삭 성인은 ‘결핍(缺乏, nonaquisitiveness: 더 정확히 말한다면 물욕이나 소유욕이 없는 것)은 수도생활의 시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수도자들은 물질적인 욕망과 세속적인 관심사를 멀리합니다. 그들은 평화로운 마음과 배우려는 의욕, 계속적인 회개의 자세, 영혼의 성화를 위한 순수한 갈망을 지닌 채 하느님을 향한 완전한 예배생활을 위해 가족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수도자들은 금식, 안락함의 거부, 자아의 부정, 살아 있는 기도 등 영적인 수련생활을 쉼없이 함으로써 하느님의 지혜가 날마다 자신들의 마음 속에 계시되도록 노력합니다.

 

따라서 경건한 정교회 신자들은 수도원을 영적인 오아시스로 여기며, 그 곳에서 자신을 성화(聖化)하는 기쁨과 하느님 현존의 환희를 맛보게 됩니다. 특별히 기도는 수도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룹니다. 한국처럼 많은 사람들이 비정교인이며, 정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수도원에서 드려지는 기도가 선교의 가장 중요한 과업중 하나가 됩니다. 예식 시간표에 따라 거행되는 예배와 평화롭고 차분한 수도원 분위기는 많은 분들에게 정교회 예배생활의 경건함과 풍부함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영적인 자양분을 충분히 제공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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