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질문에 대해 쉬운 대답을 제공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과제가 아니며, 도리어 우리 자신이 신비를 의식하도록 계속해서 가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느님은 우리가 지닌 지식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경탄의 원인이다.
- 칼리스토스 웨어 (디오클리아의) 대주교(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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