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수녀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20세기의 위대한 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곧, 악몽같은 시대에 자신의 신앙을 용감하게 살았고, 마침내는 1945년 독일의 라벤스브룩 강제수용소에서 순교자의 죽음을 맞이한 뛰어난 신학자로 말입니다.
미래의 마리아 수녀인 엘리자베타 필렌코는 1891년 당시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던 리가(오늘날 라트비아의 수도)에서 태어났으며, 러시아 남부의 흑해 해안가 아나파(Anapa)라는 작은 도시 가까이에 있는 가족 소유지에서 자라났습니다. 가족들 사이에서 그녀는 리자(Liza)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잠시동안 아나파의 시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는 식물원과 얄타(Yalta: 크림반도 남부 연안에 있는 도시)에 있는 학교의 책임자였습니다. 어머니쪽으로 리자는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파괴된 파리의 바스티유(Bastille) 감옥 마지막 교도소장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독실한 정교 그리스도인이었으며, 딸이 자신의 가치관과 감수성, 삶의 목표 등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리자는 어린 아이였을 때 한번은 아나파에 새로 지어지는 성당을 장식할 이콘을 그리는 일을 도우려고 자신의 돼지 저금통을 깨기도 했습니다. 일곱 살때 그녀는 자신이 수녀가 되기에 충분한 나이가 되었는지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일년 뒤 그녀는 한 성지에서 다른 성지로 걸으면서 자신의 삶을 보내는 순례자가 되기 위해 부모의 허락을 구하기도 했습니다.(사실 많은 세월이 흐르고나서 뒤늦게 1940년쯤, 그러니까 독일이 점령한 파리에서 살 때, 시베리아의 방랑하는 순례자요 선교사가 되고픈 생각이 다시금 그녀의 머리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열네 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 일은 그녀에게 도저히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부당한 일로 여겨졌으며, 이로 인해 그녀는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만일 정의가 없다면, 하느님도 없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유년기는 끝난 것입니다.
남편을 잃은 어머니가 1906년에 가족들을 상뜨 뻬쩨르부르그로 옮겼을 때, 그녀는 자신이 러시아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이며 또한 급진적인 사상과 집단들이 생겨나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알렉산더 블록(1880-1921)같은 상징주의 시인을 중심으로 모여든 과격한 문학동아리의 일원이 되었는데, 그녀 나이 열다섯 살에 그 시인을 처음 만났습니다. 리자(마리아 수녀)는 예고도 없이 그를 방문하였고, 블록은 자신들의 예상치 않은 만남에 아래와 같은 구절을 포함한 시 한 수로 답하였습니다.
“오직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자신을 사람이라고 부를 권리가 있다.”
시와 함께 적은 짧은 글에서 블록은 많은 사람이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리자에게 말하였습니다. 세상에 지친 시인은 그녀에게 “죽어가고 있는 우리에게서 어서 달아나라”고 강하게 다그쳤습니다. 그녀는 “죽음과 악에 대항하여 싸우겠노라”고 맹세하면서 대답하였습니다.
당시 아주 많은 동시대인들처럼 그녀도 좌파쪽으로 끌렸습니다만 자신이 만났던 급진주의자들에게 자주 실망하였습니다. 비록 자신들을 혁명가라고 여기면서도 그들은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이 그저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의 영혼은 심지어 죽음을 맞이한다 할찌라도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영웅적 위업을 간절히 열망하였다”고 그녀는 회고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아는 어느 누구도 실제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친구들이 혁명을 위해서 죽어가는 누군가에 대해 듣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적었습니다: “그들은 찬성하든 찬성하지 않든 아주 높은 수준의 이해심을 보여주면서 그것(혁명을 위해 죽는 것)을 가치있게 여길 것이고, 아침에 해가 떠서 달걀 후라이를 할 시간이 될 때까지 밤을 지새우면서 토론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혁명을 위해 죽는 것은 누군가의 목에 휘감긴 밧줄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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