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 4

+ 칼리스토스 웨어 대주교의 정교회 역사(2장 비잔티움 I)2

6차에 걸친 첫 공의회들(325-681) 초기 비잔틴 시대에 교회의 삶은 일곱 차례의 세계공의회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 공의회들은 두 가지 과제를 완수하였다. 첫째, 이들 공의회는 알려진대로 다섯 개의 큰 교구 또는 총대주교구의 지위를 확고히 하면서 교회의 가시적인 조직에 대해 명확히 하고 설명하였다. 둘째, 더욱 중요하게 공의회는 성삼위(삼위일체)와 육화(성육신)와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교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확정적으로 규정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들이 인간의 이해와 언어를 넘어서 있는 ‘신비들’로서 여겨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주교들은 공의회에서 (교리에 대한) 정의와 규정을 만들 때, 자신들이 신비를 설명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교리에 대해 말하고 생각..

정교회의 역사 2022.08.16

칼리스토스 웨어 대주교의 정교회 역사(1장 시작) 3

정교 역사에서 많은 시기에 붉은 순교의 가능성은 상당히 적었으며, 푸르고 하얀 형태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또한 무엇보다도 이 세기(20세기)에 정교인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번 붉은 순교를 겪도록 부름을 받은 시기가 있었다. 키프리아노스가 강조했듯이 하나의 주교직을 공유하는 주교들이 한 공의회에 함께 모여 자신들이 직면한 공동의 문제를 의논해야만 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교는 교회의 삶에서 공의회들의 위치에 언제나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하였다. 공의회는 하느님이 자기 백성을 인도하기 위해 선택하신 주된 도구라고 믿어지며, 보편적인 교회는 바로 근본적으로 ‘함께 의논하는’(conciliar) 교회라고 여겨진다.(실제로 러시아어에서 형용사 ‘소보르니’[soborny]는 ‘보편적인’[ca..

정교회의 역사 2021.07.10

+토마스 홉코 신부의 교회사 8

8세기 성화 논쟁 8세기에 동방의 이소리안(Isaurian) 통치자인 레오 3세(717-741)와 콘스탄티노스 5세(741-775)는 교회를 자신들의 지배 아래 종속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대한 지배권을 얻으려고 이 두 황제는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맹렬히 공격하였는데, 특별히 교회의 일치를 수호하는 수도자들을 공격하였습니다. 공격은 성화(이콘)을 공경하는 이들에 대한 극심한 박해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박해의 대상자들은 많이 있었는데, 그것은 정확히 우상숭배와 이교주의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경건한 사람들 사이에 성화에 대한 지나친 공경이 실제로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753년에 열린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성화를 공경하는 것을 정식으로 정죄하였습니다. 교회와 공공건물, 그리고 사람들의 가정에서 모든..

정교회의 역사 2021.01.25

+ 토마스 홉코 신부의 교회사 5

5세기 내적인 투쟁 5세기초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플이 교회와 제국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각자의 위치에 대해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인 네스토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 ‘테오토코스’(Theotokos)라는 전통적 칭호로써 존경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그는 성모님에게서 나신 분은 영원한 하느님의 로고스가 와서 거하시는 ‘사람’일 따름이지 로고스 자신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을 ‘하느님을 낳으신 분’을 뜻하는 테오토코스로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성 끼릴로스(444년 안식)는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을 강력하게 거부하면서, ‘육신을 따라’ 성모님에게서 나신 분은 바로 거룩한 하느님의 로고스이시기 때문에 성모님..

정교회의 역사 202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