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의 역사

+ 칼리스토스 웨어 대주교의 정교회 역사(2장 비잔티움 I)2

ttoza 2022. 8. 16. 22:49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다리(창세기 28:10-12)

 

6차에 걸친 첫 공의회들(325-681)

 

초기 비잔틴 시대에 교회의 삶은 일곱 차례의 세계공의회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 공의회들은 두 가지 과제를 완수하였다. 첫째, 이들 공의회는 알려진대로 다섯 개의 큰 교구 또는 총대주교구의 지위를 확고히 하면서 교회의 가시적인 조직에 대해 명확히 하고 설명하였다. 둘째, 더욱 중요하게 공의회는 성삼위(삼위일체)와 육화(성육신)와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교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확정적으로 규정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들이 인간의 이해와 언어를 넘어서 있는 신비들로서 여겨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주교들은 공의회에서 (교리에 대한) 정의와 규정을 만들 때, 자신들이 신비를 설명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교리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는 것에서 어떤 잘못된 방식들을 배제하려고 하였다. 사람들이 오류와 이단의 길로 잘못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주교들은 신비의 주위로 담을 둘러 쳤던 것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공의회에서 때때로 토론은 추상적이고 멀리 동떨어진 것처럼 들렸으나, 그것은 바로 인간의 구원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목적에 의해서 고무되고 격려되었다.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인류는 죄에 의해 하느님에게서 분리되었으며, 자신의 죄가 만들어낸 분리의 벽을 자기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는 무너뜨릴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느님이 먼저 시작하신 것이다. 그분은 사람이 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다시 죽은 자들에게서 부활하셨으며, 이로써 인류를 죄와 죽음의 결박상태에서 구해내셨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적인 가르침이며, 공의회가 보호하려고 관심을 가졌던 것이 바로 이 구속의 메시지였다. 이단들은 위험했으며, 단죄가 요구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손상되게 하였으며,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장애물을 세웠고, 이로써 사람이 완전한 구원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이 구속의 메시지를 나눔(또는 공유, sharing)이라는 말로써 표현하였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분 신성의 부유함을 공유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가난을 공유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고린토 28:9) 사도 요한의 복음서에는 같은 생각이 조금 다른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신성의 영광을 공유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연합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이사람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이 사람들을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2-23) 그리스 교부들은 이 본문들과 또한 비슷한 다른 본문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감히 인간의 신화’(神化, 테오시스 theosis)에 대해 말하였다. 교부들은 만일 사람이 하느님의 영광을 공유하려면, 곧 사람이 하느님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려면, 이는 사실상 사람이 신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은총에 의해 본래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되도록 부름받았다. 그런 이유로 아타나시오스 성인(+373년 안식)(그리스도의) 육화의 목적을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으니 이제 사람이 하느님이 되리라라는 말로써 요약하였다.

 

이제 만일 이 하느님이 되는 것, 신화(theosis)가 가능하려면,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느님이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하느님보다 조금이라도 못한 존재는 인류를 구원할 수가 없다. 따라서 만일 그리스도가 구원하려면, 그분은 하느님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오직 그가 우리처럼 참으로 완전한 사람이어야만 우리 사람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참여할 수가 있다. 하느님이며 동시에 사람이신 육화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다리가 놓여졌다. 우리 주님은,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하고 약속하셨다.(요한 1:51) 천사들만 사다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그 사다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느님이며 완전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각각의 이단은 이 필수적인 확언(確言)의 어떤 부분들을 차례로 약화시켰다. , 그리스도는 하느님보다 덜한(못한) 존재로 창조되었다.(아리우스주의) 또는 그리스도의 인성은 그의 (성삼위 모두를 포함하는 삼위일체로서의) 신격에서 너무 분리되었기에 그는 하나가 아닌 두 인격이 되었다.(네스토리우스주의) 또는 그는 참된 사람으로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단성론, 단의론) 각각의 공의회는 다음의 확언을 옹호하였다. 4세기에 열린 첫 두 개의 공의회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느님이라는 첫째 부분의 주장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성삼위(삼위일체)의 교리를 만들었다. 5, 6, 7세기에 있었던 그 다음의 네 차례 공의회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성을 지녔다는 둘째 부분에 집중하였고, 또한 인간과 하느님(의 신격)이 한 인격 안에서 연합되는 방법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거룩한 이콘을 방어한 제 7차 공의회는 처음에 다소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앞의 6차에 걸친 공의회처럼 이 공의회도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육화(성육신)와 인간구원에 관련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