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우스 3

+칼리스토스 웨어 대주교의 정교회 역사(2장 비잔티움 I) 3

325년 니케아 공의회의 주된 과제는 아리우스주의에 대한 단죄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사제인 아리우스는 성자는 성부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하였으며, 또한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를 분리하는 선을 그으면서 성자를 피조물에 속한 것으로 여겼다. 곧, 그가 우수한 피조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심할바 없이 그가 이렇게 주장한 동기는 하느님의 고유성과 유일무이성, 그리고 초월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하느님보다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그의 가르침이 가져온 결과는 우리 인간의 신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하느님일 때에만 그는 우리를 하느님과 하나가 되게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 어느 누구도 아니라 오직 하느님 자신만이 인간..

정교회의 역사 2023.07.04

+ 칼리스토스 웨어 대주교의 정교회 역사(2장 비잔티움 I)2

6차에 걸친 첫 공의회들(325-681) 초기 비잔틴 시대에 교회의 삶은 일곱 차례의 세계공의회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 공의회들은 두 가지 과제를 완수하였다. 첫째, 이들 공의회는 알려진대로 다섯 개의 큰 교구 또는 총대주교구의 지위를 확고히 하면서 교회의 가시적인 조직에 대해 명확히 하고 설명하였다. 둘째, 더욱 중요하게 공의회는 성삼위(삼위일체)와 육화(성육신)와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교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확정적으로 규정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들이 인간의 이해와 언어를 넘어서 있는 ‘신비들’로서 여겨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주교들은 공의회에서 (교리에 대한) 정의와 규정을 만들 때, 자신들이 신비를 설명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교리에 대해 말하고 생각..

정교회의 역사 2022.08.16

+ 토마스 홉코 신부의 교회사 4

4세기 콘스탄티노스 4세기는 초기 교회에 대해 벌인 것 가운데 가장 심한 박해, 곧 디오클레티안 황제의 박해와 함께 시작되었다. 초기 순교자들의 가장 긴 명단이 이 시기(303-306년)에서 비롯된다. 디오클레티안이 물러난 뒤 제국의 지도자들 사이에는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312년에 콘스탄티노스는 서방의 왕좌를 놓고 주 경쟁자 막센티우스와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로마 근처의 밀비안(Milvian) 다리 전투를 앞두고서 콘스탄티노스는 한 환상을 보게 되는데, 아마도 꿈에서였던 것같다. 그는 ‘이 표시로써 정복하라’는 말과 함께 그리스도의 십자가 또는 라바룸(Labarum[Chi Rho: XP])을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을 자기 군인들의 겉옷과 무기에 달았고, 전투에서 승리했다. 콘스탄티노스는 곧바..

정교회의 역사 2020.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