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의 역사

+ 토마스 홉코 신부의 교회사 4

ttoza 2020. 11. 5. 11:58

 

7세기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

 

4세기

콘스탄티노스

4세기는 초기 교회에 대해 벌인 것 가운데 가장 심한 박해, 곧 디오클레티안 황제의 박해와 함께 시작되었다. 초기 순교자들의 가장 긴 명단이 이 시기(303-306)에서 비롯된다.

 

디오클레티안이 물러난 뒤 제국의 지도자들 사이에는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312년에 콘스탄티노스는 서방의 왕좌를 놓고 주 경쟁자 막센티우스와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로마 근처의 밀비안(Milvian) 다리 전투를 앞두고서 콘스탄티노스는 한 환상을 보게 되는데, 아마도 꿈에서였던 것같다. 그는 이 표시로써 정복하라는 말과 함께 그리스도의 십자가 또는 라바룸(Labarum[Chi Rho: XP])을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을 자기 군인들의 겉옷과 무기에 달았고, 전투에서 승리했다. 콘스탄티노스는 곧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제국 안에서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었고, 또한 교회에 많은 특전과 편의를 베풂으로써 그리스도교에 대한 자신의 호감을 나타냈다. 콘스탄티노스는 죽기 전에 비잔티움의 옛 지역에 도시를 세워서 자신의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 삼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콘스탄티노플이었다. 콘스탄티노스 자신은 337년 임종할 때가 되어서야 세례를 받았다.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의 진짜 십자가를 찾아낸 그의 어머니 엘레니와 함께, 콘스탄티노스는 교회의 성인으로 인정된다. 그리스도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법령에 따라 380년에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내적인 투쟁

콘스탄티노스가 다스리는 동안 교회는 재산을 다시 찾았고, 외부의 박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내적인 문제가 생겨나서 평화를 깨뜨렸다. 먼저, 북아프리카에는 도나티스트 분파가 있었다. 이 분파는 대표자인 도나투스의 이름을 따서 이같이 불려지는 데, 그는 카르타고의 정식으로 뽑힌 주교를 거부하는 무리들 가운데 지도자격인 신학자로서 자신을 축성한 주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박해 시대에 허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교회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풀도록 압력을 가하는 대신에 콘스탄티노스는 그 논쟁에 끼어들었다. 처음에는 도나티스트들의 편에 섰다가, 나중에는 그 반대자들의 편에 서서 제국의 힘을 쓰면서 자신의 결정들을 밀고 나갔다. 분열은 한때 찬란했던 북아프리카 교회의 마지막 파괴로 끝났고, 교회의 일에 제국이 끼어들게 되는 선례를 남겼다.

 

그 다음에는 아리우스 논쟁이 벌어졌다. 알렉산드리아의 사제인 아리우스는 신성한 로고스(Logos), 곧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거룩한 아들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그는 하느님께서 무()로부터 창조하신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저 한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리우스에 따르면 하느님은 창조되지 않은 성 삼위가 아니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신 성부 한 분뿐이시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로고스 또는 말씀, 곧 아들을 창조물 가운데 첫째이고 으뜸가는 것으로 만드셨다. 말하자면 그저 거룩하다고 불려질 뿐인 이 로고스는 세상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도구로서 사람인 예수로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이신 하느님과 똑같이 창조되지 않은 신성을 지닌, 창조되지 않은 하느님의 거룩한 아들이 아니다. 그는 성령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창조물이다. 하느님은 성 삼위일체가 아니다.

 

1차 세계 공의회

아리우스주의자들에 의해 생겨난 논쟁은 325년 콘스탄티노스 황제가 니케아에 소집한 공의회에서 전체 교회의 결정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첫 세계 공의회로 알려진 이 공의회는 로고스, 곧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아들이신 분은 창조되지 않으셨고 신성을 지니셨다고 선포하였다. 그분은 성부로부터 나셨으나, 그분에 의해 창조되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다.(homoousios, 오모우시오스) 그분은 참 하느님의 참 하느님이시고, 만물이 만들어지게 한 하느님의 말씀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곧 이스라엘의 메시아요 세상의 구세주로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셔서 사람이 되신 분은 바로 이 창조되지 않고 나신 하느님의 거룩한 외아들이시다.

 

2차 세계 공의회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은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논쟁은 수십년 동안 거세게 계속되었다. 서로 다른 여러 곳에서 여러 공의회가 열렸고, 신앙에 대한 여러 가지 성명들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제국의 지원을 받았고, 니케아의 신앙을 지킨 이들은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381년에 오늘날 제 2차 세계 공의회로 알려진 공의회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리고 나서야 문제점들이 일단락 되었는데, 그 공의회에서는 니케아의 원래 결정이 다시 확증되고 성령의 신성(神性)이 선포되었다. 이 두 공의회의 서로 관련된 성명은 신앙의 상징인 정교회 신앙의 신조(Creed)를 포함하고 있다.

 

신앙의 신조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 전능하시고, 하늘과 땅과 유형 무형한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나이다. 그리고 또 오직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세대에 앞서 성부로부터 나신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며, 빛으로부터 나신 빛이시요 참 하느님으로부터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일체이시며, 만물이 다 이 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음을 믿나이다.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성령으로 또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위하시고, 사람이 되심을 믿으며, 본디오 빌라도 시대에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히심을 믿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라 믿나니, 그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그리고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니, 성령은 성부에게서 나오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하나인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죄를 사하는 하나의 세례를 알고 믿나이다. 죽은 이들의 부활과 후세의 영생을 굳게 믿고 기다리나이다. 아멘.

 

교회의 교부들

니케아의 정교(Orthodoxy)를 지킨 위대한 교부들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성 대 아타나시우스(373년 안식)와 갑바도기아의 주교들인 성 대 바실리오스(379년 안식), 그의 동생 성 니사의 그레고리(394년 안식), 이들의 친구인 신학자 그레고리(389년 안식)이다. 이들 교회의 교부들은 바른 그리스도교의 중심되는 교리를 지키기 위해 큰 고통을 무릅쓰면서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르치고 설명했는데, 곧 하느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이시라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창조되지 않고 거룩하신 위격(位格)은 하나이며 똑같은 창조되지 않고 거룩하신 본질을 지니신다.

 

교회의 공의회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또한 교회의 직제와 규율에 관한 여러 가지 교회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들은 서방에서 로마 교회의 수위권(首位權), 아프리카에서는 알렉산드리아, 동방에서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수위권을 승인했고,(교회법 6) 한편 예루살렘 교회의 존엄성을 인정했다.(교회법 7) 공의회는 교회의 주일 예배에서 속죄하는 뜻으로 하는 무릎꿇기의 실행을 금지시켰다.(교회법 20)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또한 여러 가지 교회법을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에는 콘스탄티노플은 새로운 로마이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는 로마의 주교 다음가는 영예를 누린다고 적혀있다.(교회법 3)

 

예식의 발전

4세기에는 많은 예식의 발전이 있었다. 이 시기에 성 대 바실리오스와 성 요한 크리소스톰(407년 안식)의 이름을 딴 성찬예식의 성만찬 기도문들이 대체로 공식화되었다. 예루살렘의 성 끼릴로스(386년 안식)의 것과 함께 성 요한 크리소스톰의 교리문답식 설교들을 볼 때, 4세기의 세례와 견진성사가 오늘날 정교회에서 행하는 것과 거의 똑같이 실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까지는 사순절(四旬節)과 부활절 축제가 잘 확립되어 있었다. 성탄절은 신현(神顯) 축일로부터 분리되었고, 그러므로써 1225일에 축하하는 이교도의 태양신 축제를 대신하여 독립된 교회의 축일이 되었다.

 

수도생활

4세기에는 또한 성 대 안토니(356년 사망)가 이집트에서 이끈 수도생활과 시리아, 서방 등의 수도생활이 꽃을 피우기도 했다. 이 시기의 수도 성인들 가운데는 테베의 바울로, 빠꼬미우스, 힐라리온, 사바스, 이집트의 마카리우스, 키프로스의 에피파니우스, 그리고 시리아의 에프렘 등이 있다. 서방의 수도 성인들 가운데는 제롬, 요한 카시안, 뚜르의 마르땡 등이 있다. 4세기의 유명한 주교 성인들로는 미라의 성 니꼴라오스, 뜨리문디(Trimunthys)의 성 스삐리돈, 밀란의 암브로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