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와 바리새사람 주일 성화
세리와 바리새사람 주일 성화
“바리새 사람의 교만에서 떠나
세리의 겸손한 한숨을 따름으로써
구세주를 향해 외칠지어다.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세리와 바리새사람 주일 시기송)
참회의 뜨로빠리온(뜨리오디온 기간 주일 조과에서 시편 51편 다음에 부름)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생명을 베푸시는 이여, 회개의 문을 여소서.
인자하신 이여, 불결하게 된 내 몸의 성전이
거룩한 주의 성전에 들어왔나니
당신의 자비하심으로 깨끗하게 하소서.
이제와 항상 대대로 있나이다. 아멘.
테오토코스여, 구원의 길을 곧게 하소서.
내 모든 생활을 게으름으로 보냈음으로써
내 영혼이 수치스러운 죄로 물들었나니
당신의 중보하심으로 깨끗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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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겸손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 자신이 겸손하시다’라는 놀라운 주장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창조와 구원의 행동들 안에서 그분을 관상(觀想)하는 사람들에게는, 겸손이 진정으로 신적인 특징을 가지며, 그것은 성찬예배에서 노래하듯이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는 하느님 영광의 내용과 광채 그 자체라는 것 또한 명백하다......
진정으로 완전하고 아름답고 선한 것은 동시에 자연스럽게도 겸손한 것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완전은 바로 그 완전성 때문에 선전이나 외적 영광이나 어떤 종류의 자기 과시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겸손하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완전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겸손은 바로 그분의 영광이요 모든 진정한 아름다움과 완전과 선의 원천이다......
어떻게 하면 겸손할 수 있는가? ...... 그것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오 11:29)라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를 관상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다 ...... 그리스도 없이 참된 겸손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사순절 기간은 참된 참회의 시작인 겸손을 구하는 기도로부터 시작한다. 왜냐하면 참회는 무엇보다도 만물의 참된 질서로 되돌아가는 것이고, 바른 관점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겸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신적이고 아름다운 겸손은 이 참회의 열매요 목적이다......
(알렉산더 슈메만 신부의 ‘대사순절’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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