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들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이야기 29

ttoza 2015. 11. 13. 15:08

 

 

 

 

듣기


비록 아무도 실제로 회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자궁은 경이로운 공간이다. 생명을 지닌 어린 존재에게 그곳은 보호와 따뜻함과 양육의 장소이다. 대부분의 아기들은 태어나는 순간 울음을 터트리는 데 그것은 그들이 어머니의 자궁 안에 있을 때 더 편안하고 더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한 것은 아닐찌언정 그곳은 정적(靜寂)과 고독으로 가득 찬 곳이다.

 

사순절을 포함한 정교회의 금식일(또는 기간)들은 단지 음식을 제한하고 희생만을 요구하는 때가 아니다. 도리어 그 날(또는 시기)들은 고요와 외로움 그리고 경이로움의 시간들이다. 그레고리 빨라마스(14세기) 성인은 ‘헤시키아’(hesychia)의 챔피언으로 여겨지고 있는 데, 이는 곧 침묵, 정적, 고독의 실천을 가리킨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침묵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모인 여러 장소에서 혹 침묵이 필요할 때, 우리는 고작 침묵을 어색하게 연출하기 십상이다. 라디오가 우리를 잠자리에서 깨우고, 텔레비전의 방송 프로그램을 따라 하루를 마감한다. 자동차와 버스와 엘리베이터와 대기실에 음악이 흐른다. 집안과 부엌, 욕실에까지 갖가지 소리들이 에워싸고 있다.

 

우리 주위를 소음들이 감싸면 감쌀수록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향해 소리의 장벽을 쌓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나 듣지 않고 남을 돌볼 수는 없으며, 침묵하지 않고 기도할 수는 없다.

 

어머니 자궁 속에서 보내는 아홉 달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 전에 경험하는, 놀랍고 신비로우나 짧은 시간이다. 마찬가지로 이 지상에서 보내는 우리의 일생 또한 새롭고 영원한 생명에 앞서 존재하는 짧은 시간일 뿐이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새 탄생과 새 생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안식후의 후생(後生)에서만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어머니인 교회를 통해 성부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 듣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