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비토브니차의 타데오 원로
타데오 수도사제는 1914년 세르비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15세때 의사들로부터 앞으로 5년동안만 살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밀코보(Milkovo)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수도사가 되었고, 러시아에서 피난 온 수도사들에게 배웠다. 러시아 수도사들은 볼셰비키 혁명과 당시에 핀란드 영토였던 발람(valaam) 수도원에서 있었던 ‘새로운 교회력주의자’(neo-calendarist)들의 박해에 따른 결과로 세르비아에 왔다. 밀코보의 러시아 수도사들 가운데에는 옵티나(Optina)의 암브로시오스 성인 제자로 널리 알려진 암브로시오스 사제가 있었다.
존경해마지 않던 거룩한 원로 암브로시오스 사제가 안식한 뒤, 타데오 원로는 고르니악(Gorniak)에 있는 수도원으로 옮겼으며, 그곳에서 러시아인 수도원장 세라핌 신부에 의해 수도서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년뒤 타데오 원로는 사제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된뒤, 원로는 책무를 맡게 되었으며,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펙(Pec)에 있는 총대주교청에서 봉사하였다. 이곳에서 수도인 베오그라드로 돌아온뒤 게슈타포(나치독일의 비밀경찰)에 체포되었으며, 당시는 이미 총대주교 가브리엘과 미래의 성인인 니꼴라이 벨리미로비치도 붙잡힌 상태였다. 게슈타포는 타데오 원로가 나치의 점령에 저항하는 세르비아 레지스탕스의 지도자들 가운데 하나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중에 이같은 혐의에서 풀려났으며, 타데오 원로는 비토브니차(Vitovnitsa)의 수도원으로 떠났다.
원로는 비토브니차에서 남은 생의 대부분동안 머무르려고 하였다. 그는 영적인 원로로 알려졌으며, 날마다 충고와 도움, 위로를 바라며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그를 시기하는 이들의 핍박을 받았고, 그래서 마지막 몇 년은 영적인 자녀들과 함께 지냈다. 2003년 3월 13일 그는 안식하였고, 비토브니차 수도원에 묻혔다. 그는 많은 영적 자녀들에게 공경을 받았는데, 특별히 세르비아인, 몬테네그로인, 마케도니아인, 보스니아인과 나중에 그리스도인이 된 이슬람교인들이 존경하였다.
이제 타데오 원로의 말씀 가운데 100가지를 번역하여 싣는다.
1. 영적인 삶은 지성적인(noetic: 정신을 뜻하는 그리스말 nous가 어원인 단어) 삶이며, 이런 삶은 이 세상의 모든 욕망이나 느낌보다도 더 고차원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