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신학을 할 것인가?

정교 근본주의

ttoza 2023. 2. 20. 19:36

 

 

정교 근본주의

정교 그리스도교의 초석이 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위대한 교부들에 대한 공경인데, 교부들은 단지 거룩함의 모범이었을 뿐 아니라 또한 자신들의 시대에 가장 뛰어난 지성인들이었습니다. 성 대 바실리오스나 신학자 성 그레고리오스, 그리고 고백자 막시모스 같은 인물들의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그러했으며 앞으로도 언제나 정교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에 필수적인 안내자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최근에 아주 많은 정교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교부들에 대한 근본주의자같은 접근을 보여주는 공적인 진술을 해온 것은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만일 정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런 새로운 현상의 발전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정교회 전체는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되고 이용당할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다른 근본주의자들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정교 근본주의는 모든 신학적인 가르침을 신학적 공리(公理: 수학이나 논리학 따위에서 자명한 진리로 인정되어 다른 명제를 증명하는 데 전제가 되는 원리)의 부분집합으로 축소시키며, 그리고나서 다른 것들의 가치와 자격을 이것들(신학적 공리)에 따라 측정합니다. 특징적으로 이것(정교 근본주의)은 정교회의 개인들과 기관들 또는 전체 지체들이 정교 가르침에 대해 (정교 근본주의) 스스로 규정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비난과 고발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그리스의 볼로스(Volos) 신학 아카데미가 현대의 교회 안에서 교부들의 역할을 검토하기 위한 국제회의를 열었을 때,(2010) 그리스 정교회의 급진적인 기회주의자들이 그 회의와 참석한 주교를 이단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정교 근본주의에서 핵심적인 지적 오류는 교부들이 모든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였다는 전제 속에 있습니다. 아마도 그런 오판은, 정교 신학은 결코 바뀐 적이 없었다는, 또 하나의 동일하게 결함이 있는 추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도 정교 신학은 변화해왔으며,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잇따른 세계공의회에서 교부들이 서로 합의를 이뤄야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근본주의에 대한 최근의 학술적 연구에 의해 확인되는 것처럼, 모순 또는 이율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근본주의자들이 현대성의 부패에서 정교 그리스도교 신앙을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정교 그리스도교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그 자체로 매우 현대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정교는 근본주의자들이 마땅히 이러이러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그런 모습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신학을 주의깊게 읽는다면,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교회의 성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과 때로는 아주 때로는 격렬하게 서로 의견이 달랐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베드로 사도와 바울로 사도는 할례 문제로 서로 불화하였습니다.(갈라디아 2:1-14 참조) 대 바실리오스 성인과 신학자 그레고리오스 성인은 성령의 신성을 인정하는 최선의 방법 때문에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의 칼리프(과거 이슬람 국가의 통치자를 가리키는 칭호)가 다스리는 지역에 있는 수도원에 살았던 다마스커스인 요한 성인은 자기 공동체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새로운 성가법을 개발하기 위해 이미 있었던 성가법의 전통을 포기하였습니다.

 

정교 근본주의자들이 또 다른 여러 거짓말로써 교부들에 대한 자신들의 환원주의(還元主義: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상이나 개념을 단일 레벨의 더 기본적인 요소로부터 설명하려는 입장)적 이해를 강화한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흔하게 옹호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수도공동체가 언제나 정교 가르침의 수호자였다는 주장입니다. 둘째로는 교부들이 반()지성주의적이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교부들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서구적인 것에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구합니다. 이런 주장들 하나하나는 특정한 이유 때문에 명백히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들 모두는 현대세계에서 도피하라고 주장하는 이념적 가식(假飾: 진실과 진심을 숨기는 것)의 증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서서히 퍼지는 정교 근본주의자들의 위험성은 그들이 전통과 근본주의의 차이를 일부러 애매하며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전통을 정치적 무기로서 다른 용도에 맞게 고침으로써, 그 이론가들은 자기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매우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소속된 종교단체에서 탈퇴하는 이 시대에, 근본주의자들의 사상이나 이념이 평범한 지역교구 안으로 확산됨으로써 우리 자녀들이 종교적 극단주의와 무종교 사이에서 한 쪽을 선택하게 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높은 가치를 지닌 교부들의 관련성과 유의미성은 자기홍보에 쓰이는 일련의 화석화한 주장과 명제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고수하는 데 있지 않음을 정교의 고위성직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널리 선언해야할 때입니다. 교부들의 중요성은 하느님을 찾고, 또한 그 분을 세상과 함께 나누기 위해 그들이 기울였던 성실하고 정직하며 영혼을 다 바친 탐구에 있습니다. 교부들과 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자들식의 연구는 결코 참된 하느님께 이르지 못하며, 오직 우상숭배로 이끌 뿐입니다.

 

* 글쓴이: 조지 E. 데마코풀로스(미국 뉴욕에 있는 포덤[Fordham] 대학교의 역사신학 교수. 같은 대학의 정교 그리스도교 연구센터의 책임자이자 공동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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