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신학을 할 것인가?

젠더의 신학 4

ttoza 2023. 7. 13. 14:38

 

 

젠더의 신학 4. 새로운 창조 속의 여성. 초대교회

 

소피아 마차리오티-코스타라

 

그리스도의 육화(성육신)이후 인류의 운명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으며, 인간 행동의 살아있는 본보기가 둘째 아담인 완전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세속적인 혁명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와 함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은 침묵 속에서, 그러나 강력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 , 인내와 사랑, 희생, 겸손을 통해 내적으로 왔습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평등과 정의, 사랑, 그리고 서로서로의 희생이 인간 행동의 동기가 되는 삶의 혁명적 모범을 소개한다 할찌라도, 그리스도의 육화는 그 어떤 사회적 불의에서 해방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라 죽음과 부패에서 해방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죽음을 당하고 있으며 이 세상은 그 어느때보다도 더 부패한 상태입니다. 이같은 옥시모론’(oxymoron: 형용모순[形容矛盾] 또는 모순어법. 이것은 상반된 어휘를 결합시키는 수사법이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두개의 그리스어 어원인 옥수스[oxus]와 모로스[moros]로 이루어진 단어로 '날카로운, 예리한, 똑똑함'을 뜻하는 oxy'바보, 저능아'를 뜻하는 moron의 합성어이다. 결국 똑똑한 바보라는 뜻으로 단어 자체에 모순이 드러나 있다. 모순어법은 겉으로 보기에는 부조리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심오한 진실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눈을 감아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Close your eyes, and you will see.] 같은 표현이 한 예이다.)은 이 현세를 넘어선 더 높은 단계, 곧 하느님의 나라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삶과 행동은 여성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유대사회에서 가장 무시되고 뒷전으로 밀려난 여성들에 대한 그분의 연민과 존중을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간통한 여성(요한 8:1-11),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른 여성(요한 12:1-8, 마태오 26:6-13, 마르코 14:3-9), 하혈병을 앓던 여성(마태오 9:20-22, 마르코 5:25-34, 루가 8:43-48), 자기 딸이 마귀에 사로잡힌 가나안 여성(마태오 15:21-28, 마르코 7:224-30) 등입니다. 예수는 또한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고 그가 바친 헌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습니다.(마르코 12:42-44) 예수는 여성은 율법과 성경을 바로 잡아 고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유대의 전통과 자신을 구별하였습니다.(루가 10:38-42) 바로 이 본문에서 예수는 비록 마르타가 가정에서 지켜야할 여성의 의무에 대한 사회적 이해에 일치하였다 할찌라도 동생 마리아에 대한 마르타의 비판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비록 그리스도가 여성을 영광되게 하셨지만, 복음서가 흔히 그리스도의 전도여행에 함께 하면서 여러 가지 실제적인 방식으로 그를 돕는 한 무리의 여성들에 대해 언급함에도 불구하고 열두 사도 가운데에는 여성이 없었습니다.(루가 8:1-3) 우리는 향유가진 여성들이 자신들의 강한 신앙에 대한 암시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친밀한 관계의 표지인 활기있고 힘찬 행동을 보여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여성들은 첫 복음전도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사도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요청을 들었기 때문입니다.(루가 24:8-11, 마태오 28:9-10, 요한 20:17-18) 이 여성들은 루가복음에서 언급된 사도들 무리에 속한 구성원으로 여겨지며,(루가 24:22)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사역인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 승천, 오순절 등의 위대한 사건들에 함께 하였습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당시 사회가 받아들인, 여성에 대한 전통적 모델 또한 첫(초대) 교회의 삶 속에 널리 퍼져있음을 알게 됩니다. 지도자들과 가장 큰 책임을 떠맡은 이들은 남성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여성들이 자신들의 전통적 역할을 넘어섰을 때에는 사도들과 공동체 전체에 의해 존중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여성들은 흔히 동역자(同役者, co-worker)와 보조자(조수, 협력자)로서 높은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브리스킬라(18:1-3, 18-19, 24-26)와 리디아(16:14, 40), 다비타(9:36)는 그들의 복음전도와 자선사업으로 인해 높은 평가와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 여성들이 이미 자신들의 집을 떠나 직업을 갖고 일하면서 매우 전통적인 도시인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여성을 향한) 표준(기준, 규범)의 차별화(분화)에 일정한 한도(한계)와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울로 사도는 서신에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높은 존경을 받으며 자신의 복음전도 사역에 동역자로 일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을 말하고 있습니다.(16:3-7, 고전 1:11, 필립보 4:2-3, 필레몬 1:2) 그는 특별한 사랑과 존경으로 이들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자신이 또한 말하고 있는 남성들과 이 여성들 사이에 어떤 차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로 사도는 또한 처음으로 여성 보제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16:1, 여기서 봉사하는 여교우’ [페베 Phoebe]는 문자적으로는 여성 보제’[deaconess, 그리스어로는 디아코니사’]뜻이다.) 이 직무를 위한 자격과 자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딤전 3:2-12) 바울로의 서신에서 우리는 또한 여성들이 성령에 의해 주어진 특별한 은총에 따라 일을 수행하는 것이 금지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에는 예언을 하는 여성들이 있었으며,(고전 11:5,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할 때...“예언을 하는 것’[prophesying]을 뜻한다.) 전도자 필립보 (보제)의 네 딸들 또한 사도행전에서 예언자로 언급되고 있습니다.(21:8-9)

 

한편 다른 경우에 바울로 사도는 여성에 대해 매우 엄격하며, 당시 사회가 수용한 여성에 대한 전통적 모델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껏 여성에 적대적인 차별의 신학을 그리스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비록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3:28)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특별히 고전 11) 그의 언어는 가혹하며, 여성은 남성 다음에 오는 둘째 자리에 속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 어려운 주제에 다가가 바울로 사도의 신학을 정말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매개변수들, 곧 시간과 장소, 그리고 은총 등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바울로 성인의 서신들은 특정한 신도 공동체에 보내졌지만, 모든 세대를 향한 그리스도의 영원한 진리를 전해줍니다. 여성은 머리를 가리지 않고는 기도하거나 예언하지 말아야 하고,(고전 11:5) 교회에서는 말하지 말아야 하고,(고전 14:34, 딤전 2:11-12) (부부 사이의 성적인 관 계만은 예외로 하면서[고전 7:1-5]) 자기 남편에게 예속되어야 한다(골로사이 3:18, 에페소 5:22-24, 디도서 2:3-5)는 금지들은 확실히 사도 시대의 관행과 의견들을 반영합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바울로 사도는 초대교회 안의 노예 문제에 대해 말을 합니다. 그는 노예들이 자기 주인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부추기지 않으며, 반대로 노예들은 자기 주인을 존경하고 사랑하라고 충고하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이 모독을 당하지 않으실 것이고, 우리의 교회가 비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디도서 6:1) 초대교회 안에서 노예들이 공동체의 평등한 구성원이요 하느님 나라의 동등한 시민으로서 존중되었다는 사실은 노예제를 그리스도교적인 기풍(氣風: 어떤 집단이나 지역 사람들의 공통적인 기질.)(또는 정신)에 반하는 제도로 단죄하는 것에 대해 어떤 의문도 남기지 않게 합니다. 그러나 바울로 성인에게 첫째인 우선순위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하기위해 주어진 환경 속에서 구원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고전 10:23-33)

 

위의 해석에 비추어볼 때 여성에 대한 금지는 그리스도교적인 가르침에 모순되는 것으로 생각되어서는 안되며, 자신이 돌보는 양들 전체의 구원을 위한 바울로 사도의 사목적 돌봄과 보살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야합니다. 그가 한편으로는 예언하는 여성들에게 충고를 하고,(초대교회 때 예언자들은 또한 교회의 모임에서 가르치는 일을 맡아했다. 고전 14:1-25)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교회 안에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관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설명하자면 후자(여성들이 교회 안에서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의 경우 바울로 사도는 신앙의 주제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으면서 미성숙한 행동으로 교회의 모임에 지장을 주고 혼란을 일으키는 기혼여성들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여성들에게 사도는 침묵을 지키고, 남성들이 성경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으므로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보라고 충고합니다.

 

바울로 사도는 또한 머리를 가리우는 것을 당시 여성들의 머리 모양새와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의 공통된 관습과 연결시킵니다.(고전 11:13-15) 현대의 여성들 귀에 거슬리게 들리는 언어는 다시 한번 더 사목적인 매개변수(parameter)를 써서 당시 사회의 풍조(정신)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끼치는 이교(異敎, 비기독교)의 영향을 염려하였습니다. 전통적인 유대교의 본보기와는 반대로 새로운 (기독교)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교 여성들이 누렸던 평등과 존중은 여성들에게 대단한 자유를 선사하였으며, 이로 인해 다른 극단인 이교적 자유방임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바울로 사도는 맨 처음 창조된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느님에 의해 여성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이는 여성의 생식력이 세계의 주된 창조적 힘이었다고 가르쳤던 우상숭배적인 종교의 관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여성해방(feminist 페미니스트) 운동에 가장 불미(不美)스럽고 빈축을 살만한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은 여성은 자기 남편에게 순종해야한다는 바울로 사도의 요청입니다. 그는 여성이 교회 안에서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한 것에 대해 책임이 있는 젠더의 신학을 고안해낸 것으로 인해 비난받아왔습니다. 그러나 공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그의 전체적인 저술을 편견없이 공명정대하게 살피는 것이 필요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신학에 담긴 구원의 말씀이 참된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비추어주고 드러내보여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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