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리오디온

영적인 전쟁 2

ttoza 2024. 3. 10. 20:42

 

 

영적인 전쟁 2

(사도 바울로는 자신의 영적인 투쟁에 대해 아래와 같이 쓰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입니다.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 있는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마음 속으로는 하느님의 율법을 반기지만 내 몸 속에는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법은 나를 사로잡아 내 몸 속에 있는 죄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나는 과연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체로는 죄의 법을 따르는 인간입니다.”(7:15-25)

 

많은 고백자들이 적지 않게 실망하면서, 자신들이 같은 죄를 다시 짓는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따라서 (죄를 고백하기 위한) 그들의 고백성사는 반복되며, 자신들에게 변화가 없거나 영적인 삶의 진보와 발전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습관적이고 상습적인 자기들 죄의 본질과, 고백성사 때에 자신들이 앞서서 고백한 것과 같은 종류의 죄를 매번 다시 인정해야만 한다는 사실 때문에 크게 낙심합니다. 자신들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같은 죄에 계속해서 빠져버리고 맙니다.

 

성 베드로 다마스커스인(11세기, 시리아인 수도사)은 같은 죄를 반복해 지으면서 고백성사에 고착되어 있다고 느끼는 죄인에게 아래의 가르침으로 약간의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심판받는 것이지 유혹에 맞서서 투쟁해야만 하기 때문에 심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한 평정심(apatheia, 정념에서 해방된 상태)을 얻기까지 우리들 대부분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 끌리막스 성인(579-649, 시나이의 수도자)이 말한대로, ‘모든 사람이 완전한 평정심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회개와 고백성사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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