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5

칼리스토스 웨어 대주교의 정교회 역사(1장 시작) 1

1장: 시작 “마을에는 땅속으로 깊게 판 소성당이 있으며, 그 입구는 조심스럽게 위장되어 있었다. 몰래 한 사제가 마을을 방문하였을 때, 성찬예배와 다른 성사들을 집전하는 곳은 바로 여기이다. 이런 경우 만일 마을사람들이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나 안전하다고 믿게되면, 낯선 사람이 나타났을 때 미리 알려주기 위해 바깥에 남아있는 보초만 제외하고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소성당 안으로 모여든다. 다른 때에는 장소를 바꾸어서 예배가 이루어진다...” “부활절 예배는 공식적인 국가 기관의 방에서 이루어졌다. 특별한 허가증을 가진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었으며, 나는 내 자신과 어린 딸을 위해 허가증을 받아두었다. 약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으며, 그들 가운데는 내가 아는 사람들도 몇이 있었다. 한 나이든 사제가 ..

정교회의 역사 2021.05.13

+ 토마스 홉코 신부의 교회사 3

3세기 그리스도의 교회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죽음(185년)으로부터 데시우스 황제의 때(249년)까지 상대적으로 평화를 누리며 지냈습니다. 데시우스가 정권을 잡게 되자, 그는 전 제국에 걸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대대적인 박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데시우스에 의한 박해는 발레리안(253-260)에 의해서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제국의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도록 강요당했고, 성직자들은 발각되면 죽임을 당했으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재산은 압수당하고 파괴되어야만 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을 몰살시키고, 교회를 완전히 파괴하려는 전면적인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레리안이 죽고 나자 그의 아들인 갈리에누스는 광범위한 박해 정책을 그만두었고,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한번 3세기말까지 상대적..

정교회의 역사 2020.10.25

+토마스 홉코 신부의 교회사 2

제 2세기 [박해] 2세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은 더 많이 발전했으나, 그리스도교는 ‘불법적인 종교’라는 이유 때문에 로마제국의 당국에 의해 심한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인들이 보기에 종교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범죄자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요구되는 것, 곧 지상의 황제를 임금과 주님과 신으로 존경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국가의 법을 어겼습니다. 그들은 국가와 당국을 위해 기도하고 ‘존경해야 할 사람은 존경’했지만,(로마서 13:1-7) 하느님과 그리스도께만 드려야 마땅한 영광과 예배를 세속의 왕에게 드리기는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법은 ‘그리스도인은 불법자이다’라고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속적인 기록물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처음..

정교회의 역사 2020.09.27

안전한 때는 결코 없습니다

안전한 때는 결코 없습니다 정교회에서 성찬예배때 신앙의 신조로서 니케아신경을 고백하기 바로 전에 사제나 보제가 “문과 문...”이라고 가락을 넣어 읊조립니다. 이 말은 교회의 초기를 생각나게 하는데, 이때는 외부의 침입자들(당시에는 로마의 군인들)이 들어와서 교인들을 찾아내 붙잡거나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 교회의 문들이 닫힌채로 잠겨있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몇백년뒤 이슬람교인인 터키인들의 치하에서 공적으로는 이슬람교인으로 살지만 실제로는 정교 그리스도인인 ‘숨겨진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집안 바닥에 있는 비밀스런 문 아래나 또는 알려지지 않은 동굴 속에 숨겨진 교회의 성찬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런 장소들이 들키게 되면 노인에서 어린 아이에 이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