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 13

요안니스 지지울라스 4

이제 만일 역사가 ‘되는’ 것(또는 역사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성부 하느님의) 경륜(經綸) 속에서 성자의 특수성이라면, 성령의 공헌은 무엇인가? 글쎄, 정확하게는 정반대이다. 곧, 역사의 굴레에서 성자와 경륜을 해방하는 것이다. 만일 성자가 십가가에서 죽고, 그러므로써 역사적 실존의 굴레에 굴복한다면, 성자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는 분은 성령이다. 성령은 역사를 ‘넘어선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활동할 때, 성령은 마지막 날들, 곧 ‘종말’(에스카톤, ESCHATON)을 역사 속으로 가져오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론의 첫 근본적인 특수성은 그것의 종말론적 성격이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하나의 종말론적 존재, 곧 ‘마지막 아담’으로 만든다.  - 요한 지지울라스(1931-2023), ‘..

요안니스 지지울라스 3

인격은 친교 안의 타자성이며 타자성 안의 친교이다. 인격은 관계를 통해서 드러나는 정체성이다. 그것은 ‘나’의 실존과 타자성을 확인하는 ‘너’와 관계하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나’이다. 만일 ‘나’를 ‘너’에게서 분리시킨다면, 우리는 단지 ‘나’의 타자성뿐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잃는다. 다른 사람이 없이 ‘나’는 그저 존재할 수가 없다.  인격은 자유이다. 그것의 인간론적 중요성 안에서 인격은 자유가 없이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것은 다른 존재의 자유이다. 나는 (두 사람 중에서 두 번째 사람을 가리켜) (나머지) ‘다른 한(사람)’(other) 대신에 ‘각각 다른, 차이가 나는, 각양각색의’(different)라고 말하길 망설인다. 왜냐하면 ‘각각 다른’(different)은 (영리하다. 아름답..

요안니스 지지울라스 2

"감사의 성사, 곧 성찬예배 안에서 우리는 친교의 모든 차원을 발견할수 있다. 즉,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전해주며, 우리는 그분과의 친교 속으로 들어가고, 성사에 참여하는 이들은 서로서로 다른 이들과의 친교 안으로 들어가며, 창조세계 전체가 사람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친교 속으로 들어간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데, 성자와 성령은 마지막 때를 역사 안으로 가져오면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맛볼수 있게 한다." - 요한 지지울라스 페르가모의 대주교(1931-2023)

칼리스토스 웨어 대주교의 정교회역사(서론 4)

(1) 네 개의 고대 총대주교청: 콘스탄티노플(600만) 알렉산드리아(35만) 안티오키아(75만) 예루살렘(6만) 비록 규모에서는 상당히 축소되었지만, 이 네 개의 교회는 역사적 이유로 정교회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영예로서 첫째 자리에 듭니다. 이 교회들의 수장(首長)은 총대주교(Patriarch)라는 직함을 갖습니다. (2) 9개의 다른 독립(autocephalous) 교회들: 러시아(1억 – 1억 5천만) 세르비아(800만) 루마니아(2천 300만) 불가리아(800만) 그루지야(500만) 키프로스(45만) 그리스(900만) 폴란드(75만) 알바니아(16만) 이 9개의 교회들 중 폴란드와 알바니아를 제외한 나머지 7개 교회는 그리스도인 인구가 전적으로 또는 대부분 정교인 나라들 안에 ..

정교회의 역사 2021.03.06

일치를 위한 기도

2021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1월 18일-1월 25일)을 마무리하며 온라인으로 열린 글로벌 기도모임(2021. 1. 25)에서 아나스타시오스 알바니아의 대주교가 행한 사목적 안부의 인사말. -------- 시편의 몇 구절로 우리의 기원을 더합시다. “하느님, 우리를 어여삐 보시고 복을 내리소서.”(시편 67:1)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한 우리의 갈망과 열정을 강화시킬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 서로의 관계와 공동의 증언을 촉진하는 일을 위해 생겨나는 특정한 경우에 우리의 잠재력에 따라 일하도록 인도하소서. 단지 하느님의 복과 선물을 받고 그 혜택을 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또한 분명히 우리는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시편..

어느 러시아인 사제의 일기 5

10. 무엇이 우리의 영적인 힘을 증가시키는가? (싸워서) 극복된 유혹입니다. 11. 유한한 존재인 우리 안에 있는 무한한 것, 곧 사랑의 현존이 무한하신 분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죽음을 갈망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12. 이토록 어두운 우리의 삶 속에서조차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며, 도리어 그분은 우리의 기도 속에서, 신비의 성사 속에서,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분이 우리와 친교를 나누신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13. 삶은 값지고 아주 특별하며 고유한 선물이지만 우리는 어리석게도 부주의하게 삶을 낭비하며, 삶의 덧없음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그리워하고 동경하면서 뒤돌아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삶이 실제로 시작될 것처럼 보이는 미래를..

에피파니오스 수도원장 13

‘거룩한 친교’(곧, 성찬예배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모시는 것. 역자주)는 겸손을 보여주는 신비의 성사입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희생당하시며 온갖 수치와 망신, 모욕을 당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입니다. 작은 수저 안에 담긴 지극히 적은 양(의 성체와 성혈)은 그리스도 자신, 곧 우리의 위대한 하느님이며 전능하신 온 우주의 창조주입니다. 따라서 이것(거룩한 친교)는 우리에게 위대하고 확고한 신앙을 요구하는 놀라운 경험이며 사건입니다. 에피파니오스 수도원장(1930-1989)

타데오 원로 3

5.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는 것은 정상적인 영적 상태이다. 6.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기 위한 첫 단계는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완전히 내맡기는 것이다. 7.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할수 있다. 우리의 마음으로 주님을 향해 돌아설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8.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맡긴 영혼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느 것에도 곤란을 겪지 않는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그 영혼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