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교황권 15세기에 서방은 교황권과 교회공의회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교황의 지위가 최상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교회공의회의 권위가 교황의 권위를 뛰어넘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당시의 공의회 가운데 하나인 페라라-플로렌스(Ferrara-Florence 1438-1439) 공의회는 교황들에 의해 지지를 받았습니다. 터키인들에 대항해 싸우는 일에 대해 도움을 구하려고 동방교회의 대표자들이 다시 한 번 이 공의회에 참석했습니다. 라틴인들과 ‘동등한 관계’로 공의회에 받아들여진 동방교회의 대표자들 가운데는 콘스탄티노플의 황제 요한 8세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요셉, 그리고 그리스어로 이시도르(Isidore)라는 이름을 가진 키에프(키이우)의 대주교가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