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순절

사순절 세째주일(십자가 경배주일)

ttoza 2015. 3. 15. 17:12

  

사순절 셋째주일(십자가 경배주일) 이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죽음은 살해당하고 아담은 생명이 회복되었다. 십자가는 모든 사도들의 영광이며, 순교자들의 왕관이고, 성인들을 축성하는 것이다. 십자가로써 우리는 그리스도를 옷입는 것이며, 예전의 자아는 벗어버리는 것이다. 십자가로 인해 그리스도의 양인 우리는 하늘의 양우리에 들기로 정해진 한 무리의 양떼들 속에 들게 된 것이다.

 

                                                      - 성 테오도로스 스투디티스(759-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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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사순절의 한 가운데에 있다. 한편으로는 육체적, 영적 싸움들을 그동안 진지하고도 지속적으로 실천해 왔다면, 힘겨움을 느끼고 지치고 피로해진다. 우리에게는 도움과 격려가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고단함을 견디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이제 이 (영적) 순례의 목적지를 조금씩 알수 있게 되고, 점점 밝아오는 부활의 빛을 보기 시작한다. 대사순절은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이요, 비록 제한된 것이지만 십자가를 지라는 그리스도의 계명에 대한 실천적 체험이다......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르코 8:34)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짊어지신 그분의 십자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우릴 자신의 십자가를 질 수도, 그리스도를 따를 수도 없을 것이다. 다른 모든 십자가들에 의미를 부여해줄 뿐 아니라 그것들이 실제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십자가 경배주일 '시낙사리온'(synaxarion: 조과 까논 6오디 다음에 위치하며, 까논을 통해 기념하고자 하는 해당 축일의 거룩한 사건이나 주제에 대한 설명 또는 해당 축일 성인의 생애에 대한 간략한 소개 등을 담고 있다)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대사순절 셋째주일인 오늘 우리는 고귀하고 생명을 주시는 십자가 경배축일로 지냅니다. 사십일 동안의 금식을 통해 우리는 정욕에 대해 죽음으로써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쓴 맛에 입맛을 잃고 초죽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귀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가 우리에게 다가와 생기를 되찾게 해주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게 해줌으로써 우리를 격려합니다 ... 긴긴 돌길을 달려와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무성한 잎으로 아늑한 그늘을 제공해 주는 나무를 만나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힘을 얻어 나머지 갈 길을 내달리듯 말입니다. 이제 이 금식 기간, 이 좁고 힘겨운 길을 가는 우리를 위해 거룩한 교부들은 그 한 가운데에 생명을 주는 십자가를 심어 놓아 우리를 휴식하게 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피로를 씻어주고, 앞으로 더 경주해야 할 분투를 위해 새롭게 다짐하게 해줍니다 ... 또는 다르게 예를 들어 말한다면, 그것은 임금님이 오시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임금의 깃발과 문장(紋章)이 앞서고, 그 다음에 임금님이 행차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곧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승리를 보여주시고, 부활의 날에 영광 속에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미리 그분의 왕홀(王笏)이요 왕의 상징인 생명을 주는 십자가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최대로 우리에게 기쁨과 새 힘을 가득 채워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곧 임금님 자신을 만나 뵙고 그분의 승리를 소리 높여 경축한 만반의 채비를 갖추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 그것은 이 주간이 참회와 고된 금식을 실천해 온 우리로서는 물밀듯 엄습하는 쓰라림과 권태를 경험하며 마치 마라의 쓴 물(출애굽 15:22-26 참조) 곁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 거룩한 대사순절의 한 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광야를 가로지르는 우리에게 힘을 주시어 그분 자신의 부활을 통해 영적 예루살렘에 오르게 해주십니다 ... 십자가는 생명 나무라 불릴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하므로, 또한 이 나무는 에덴동산 한 가운데에 심겨졌었기에, 거룩한 교부들은 아담의 탐욕과 이 나무를 통한 아담의 회복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거룩한 대사순절의 한 가운데에  십자가의 나무를 심어 놓은 것입니다. 이 나무를 가진 우리는 더 이상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제 새 힘과 원기를 회복한 우리는 대사순절의 후반기에 이를 것이다.

 

 

- 알렉산더 슈메만 신부의 '대사순절'(그레고리오스 박노양 옮김: 정교회출판사, 2013) 141-147쪽에서 부분적으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