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순절

사순절 네째주일('거룩한 등정의 사다리'의 저자 성 요한 끌리막스 시나이 수도자 주일)

ttoza 2015. 3. 21. 13:40

 

 

사순절 네째주일(성 요한 끌리막스 수도자 주일) 성화

 

* 요한 끌리막스 성인의 축일은 원래 3월 30일이다. 그러나 정교회에서는 이 날과 함께 대사순절 넷째주일에 특별히 성인을 한 번 더 기념한다. 성인은 7세기에 이집트 시나이산 자락에 있는 성 까떼리나 수도원의 원장이었다. 성인이 '끌리막스'(Climacus)라고 불려지는 것은 그가 쓴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The Ladder of Divine Ascent: 그리스어로 '끌리막스'는 사다리라는 뜻이다.)라는 책 때문이며, 이 작품은 그리스도교 금욕주의(영적으로 훈련된 삶을 사는 것)를 전해주고 지지하는 최고의 영적 저서로 여겨진다. 이 책에서 성인은 하늘나라를 향해 올라가는 사다리의 서른 세 개 가로대(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각각의 가로대(곧, 단계)는 여러 다양한 그리스도교의 덕을 대변한다.(이를테면 순종, 회개, 겸손, 인내, 사랑 등)  이 위대한 교부의 금욕적 삶은 사순시기를 보내는 우리들에게 큰 영감을 불어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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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끌리막스) 시나이 수도자의 생애

 

수도사가 되기까지

성인은 6세기 후반에 출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 나이에 벌써 세상과 절연(絶緣)한 성인은 충실한 지적 훈련을 받은 다음 열 여섯 살이 되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가득 안고 시나이산으로 갔다. 모든 자기만족과 자기신뢰를 저버린채 겸손한 마음으로 영적인 원로 마르티리오스(Martyrius)에게 자신을 내어맡긴 성인께서는 한 걸음 한 걸음씩 영적인 계단(klimax 끌리막스)을 걸어 올라갔다. 그러면서 성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 곧 자기 자신의 의지를 거부하고 영적인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그대로 실천하려는 생각만이 충만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순종에도 불구하고 마르티리오스는 성인을 4년 동안 예비수도자로 머물게 했고, 성인의 나이 스무 살이 되어서야 정식 수도사로 받아들였다.

 

영적인 성숙함과 분별력

젊은 나이임에도 성인께서는 원로와 같은 성숙함과 대단한 분별력을 보여주었다. 한번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저잣거리에 나서게 되었는데 이때 성인께서는 적게 먹음으로써 폭식(暴食)을 피하였고, 이렇게 하여 모은 돈으로 몇 가지 물건을 사셨다. 이는 수도생활의 초심자가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 중에서) 자신에게 덜 해로운 것을 택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이처럼 성인께서는 십구 년 동안 완전한 자유로움 속에서 영적인 아버지의 기도에 힘입어 무정욕(無情慾 impassibility)의 항구에 다다르기 위한 안전한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

 

정교회 영성의 보고(寶庫)

원로 마르티리오스가 안식하자 성인께서는 자신에게 헤시카스트(hesychast: 끊임없는 내적 기도로 신적인 빛을 보게 된다고 주장한 영성가들. 10세기의 성 시메온, 14세기의 그레고리 팔라마스 성인 등이 대표적 인물)의 길을 가르쳐준 한 거룩한 원로의 조언을 받아들여 수도원에서 5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거처를 정하고, 그 곳에 40년 동안 머물면서 기도와 철야예배를 하면서 생활하였다. 성인은 오랫동안 자신의 영적인 덕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하느님께서 이제 그 빛을 남들에게 전할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시자 모세라는 이름의 젊은 수도자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이후 성인의 영적인 감화와 명성은 시나이 반도에 별처럼 빛났고 모든 수도자들은 경외심을 갖고 성인을 바라보았다. 시나이 수도원(오늘날의 성 까떼리나 수도원)의 수도원장으로서 겸손과 사랑의 본을 보여주었던 성인은 7세기 중엽에 평화로이 안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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