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제가 되어다오

어느 러시아인 사제의 일기 4

ttoza 2021. 1. 1. 18:43

 

 

7. ‘옷을 다 갖춰입은 채 수영을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리고 격정(파토스: 악으로 기우는 모든 인간적인 욕망. 또는 유한한 사물과 인간에 대한 끝없는 집착. 역자주)에 휩싸인 채 성삼위 하느님을 탐구하는 것은 위험합니다.’(성 요한 끌리막스[6-7세기]신성한 상승의 사다리에서 인용) 하지만 이것이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이) 우리가 신학에 전혀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먼저 우리 자신을 격정의 노예상태에서 자유롭게 해야만 하며, 그리고나서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렴풋이 맛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8. 저는 다음의 성서구절을 계속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너희가 만일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면, 세상은 너희를 한 집안 식구로 여겨 사랑할 것이다.”(요한 15:19) 우리가 겪는 고통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해있다는 표시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이 크면 클수록,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은 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 자신의 모범을 따르는 모든 성인들은 왜 그토록 심한 고통을 겪은 것입니까? 사물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면서 세상과 접촉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오직 이 세상(에 속한) 자녀들만이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틀림없이 정확한 화학적 반응입니다.

 

9. 사람이 아무리 정의롭고 순수하다 할찌라도, ()의 안에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태워 없애버려야만 하는 죄의 요소가 언제나 있습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가 겪는 고통에 의해서 완전히 불타 없어집니다.

 

- 알렉산더 V. 엘카니노프 신부(+1934년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