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제가 되어다오

어느 러시아인 사제의 일기 12

ttoza 2023. 4. 3. 23:27

 

그리스 북부 데살로니끼 지역의 수로티(Souroti)에 있는 성 요한 신학자 수도원. 파이시오스 성인(1924-1994)의 무덤이 있다.

 

44. 믿음은 사랑 안에서 시작되고, 사랑은 관상 안에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그분을 본다면, 그분에게서 우리 눈을 뗄 수가 없을 것이며, ‘황홀경 속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을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수많은 군중이 그랬듯이 우리는 그분 주위로 떼를 지어 몰려들 것입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저항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분께, 복음서와 성인들과 교회 안에서 그분의 모습을 관상하는 것에 굴복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의 마음을 소유하실 것입니다.

 

45. 성인들의 생애를 읽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각양각색의 성인들의 삶 속에서 드러난, 하느님께로 이르는 무한히 다양한 길의 영역 안에서 우리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인간적인 죄와 사악함으로 말미암아 얼기설기 얽힌 밀림지대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주는 안내와 지도를 얻을 수 있으며, 그리하여 빛으로 이끌어주는 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46. 죽음이 다가옴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죽어가는 어떤 여성에게, 당혹감 속에서 나는 삶도 죽음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이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만 할까요? 우리 자신을 죽음에 대해서 준비하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죽음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 묵상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는 (가짜가 아닌) 진짜이고 존엄한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47. 사람이 무엇보다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인 죽음은 신앙인에게는 전혀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는 마치 깊은 구렁텅이와 벼랑과 폭포 따위가 날개를 지닌 피조물에게는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48. 삶의 한 규칙: 거처를 옮기는 것은 오직 주변환경과 상황이 그렇게 하도록 압박하는 때에만 합니다. , 실제적인 영역 안에서는 나 자신이 먼저 나서서 (거처를 옮기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 전혀 아니며, 도리어 하느님께서 나를 두신 그 자리에서 땅 속으로 깊이 파고들기 위한 때에만 그리 하는 것입니다.

 

49. 이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우리는 그 얼마나 불쌍하고 애처로운지요! 우리의 정상적이고 평범한실존, 곧 취약하고 깨지기 쉬운 작은 섬은 무덤 너머에 있는 세상들 속에서 완전히 유실(流失)되고 말 것입니다.

 

50. 죽은 이의 가족에게 하는 조언: 땅 속에 묻혀버릴 육체에서 우리의 느낌과 아픔이 돌아서게 합시다. 죽은 이와 관련된 세속적인 기분과 세속적인 기쁨의 기억들에 의해 우리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하고, 도리어 (만일 오로지 정신적으로만이라도) 죽은 이와 함께 다른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발을 내딛읍시다. 우리에게 소중한 이의 사랑과 그()와 함께 하는 기도에 의해 우리 자신이 위로받도록 합시다. 우리의 신경과 몸이 쉬게 합시다.

 

51. 욥과 그의 친구들의 차이. 욥은 말이 아니라 사실을 원하는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욥의 친구들)은 종교적인 담화, 케케묵은 생각, 전통적인 방식 등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입니다. 욥은 거짓과 허위(虛僞), 고통의 불가해성, 죄인들이 번영하는 것,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순진하고 잘못이 없는 이들이 겪는 고통과 고뇌에 항의하며 소리칩니다. 그의 친구들은 애매모호하고 감추거나 흐지부지 덮어버리는 식의 말투로 대답합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분명합니다. 말과 생각에서 정돈되고 질서있는 계획을 세운 그들은 마찬가지로 바깥 세상에서도 조화로움을 확립했다고 상상합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성직자와 학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삶의 자리에서 매우 흔하게 발견됩니다.

 

52. 확실히 영혼이 억제되고 (감정표현을) 거리끼는 상태가 있는데, 이런 속에서는 웃음을 짓기가 어렵습니다. 누구를 향해서든 부드러움과 친절, 다정함을 느끼지 못하며, 우리의 상태는 일종의 석화(石化: 생물의 유해에 탄산석회, 규산 따위가 스며들어 본디 조직을 딱딱하게 굳히는 일)된 무각감함입니다. 오직 기도만이, 특별히 교회의 기도가 이런 상태를 없애줄 것입니다. 이런 심기(心氣)와 분위기는 거만한 사람, 우울한 사람, 허영심이 많은 사람, 방탕한 사람, 인색하고 구두쇠인 사람 등에게 특유하며 습관적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내재합니다. 그것은 죄의 상태이며, 은총이 없는 상태이고, 곧 인간의 공통된 상태입니다. 영혼에 관한한 이것은 이미 이 땅에 있는 지옥이며, 몸의 생명에도 불구하고 죽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말그대로 영혼을 죽이는죄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