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꼴라이 벨리미로비치 7

성 니꼴라이 벨리미로비치 3

주님이 우리를 위해 고통을 겪으시고 죽으시지 않았다면, 죄가 그토록 치명적인 독이라는 것을 우리 가운데 누가 알았을 것인가? 그분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가운데 누가, 죄가 그토록 끔찍한 것임을 발견하였을 것이며, 아니면 어떤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인가? 그런 경우였다면, 회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이며, 용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회개는 ‘파토스’(παθός: 영어로는 passion. 곧, 악으로 기우는 온갖 인간적 욕망이나 격정. 반대는 무정념[無情念, apathy]. 루마니아의 신학자 두미뜨루 스떠닐로아에는 파토스를 '유한한 사물과 인간에 대한 끝없는 집착'이라고 말했다. '예수기도, 성령체험' [정교회출판사, 2017] 69-70쪽 참조)와 관련되어 있고, 용서는 하느님의 은총을 통..

카테고리 없음 2021.07.15

성 니꼴라이 벨리미로비치 2

죄인에 대한 벌은 중요하면서도 창조적인 교육적 이유로 일어나며, 이 두 가지 이유는 우리에게 분명합니다. 첫째로, 벌을 통해서 하느님은 죄인을 바로잡아서 참된 구원의 길로 데려오십니다. 둘째로는, 죄인을 하나의 본보기로 삼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여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 성 니꼴라이 벨리미로비치(1881-1956, 세르비아의 주교, 신학자)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만 하나?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만 하나? 어느 주일에 안토니 블룸 대주교(1914-2003)는 다음과 같은 설교를 하였습니다: “지난 밤에 한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이 교회로 왔습니다. 그녀는 바지를 입었고, 머릿수건도 쓰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그녀를 꾸짖었습니다. 그녀는 떠났습니다. 저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모릅니다만, (그녀를 야단친) 사람은 그 여성과 아이의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 앞으로 가는 마지막 날까지 그 두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때문에 그녀는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주교는 뒤돌아서 고개를 숙이고는 제단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그날 그가 한 설교 전부였습니다. 기도를 할 때 누군가를 배제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기도의 헛된..

동방과 서방

성 니꼴라이 벨리미로비치(1881-1956) 서방은 혼란과 아수라장의 격통 속에 있고, 반면에 동방은 운명에 대한 체념과 복종 속에 있다. 서방은 계속해서 지식의 나무를 포식하면서 점점 더 지식에 대한 허기를 느낀다. 동방은 생명의 나무 아래 앉아 있지만 그 열매에 다다를수가 없다. 서방은 조직에 대한 열광과 조증(躁症)이 있고, 동방은 유기체에 대해 열광한다. 서방은 끊임없이 외적인 일을 벌이는 반면에 그 내적 가치는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 동방은 부단히 그 내적인 가치를 일구는 반면에 외적인 것은 쇠락하여 사라져간다. 서방은 가공할 바벨탑을 쌓아올리는데, 그러나 이 탑이 깎아서 다듬지않은 돌로 만들어진 까닭에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곧 무너지고 말 것만 같다. 동방은 땀을 흘리며 돌에 돌을 덧붙여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