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성론 3

+칼리스토스 웨어 대주교의 정교회 역사(2장 비잔티움 I)4

겨우 2년 뒤인 451년, 마르키아노스 황제는 칼케돈에서 새로운 주교회의를 소집하였는데, 비잔티움의 교회와 서방은 이것을 제 4차 세계공의회로 여겼다. 이제 추는 안티오키아 학파쪽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디오스코로스의 단성론적인 견해를 거부하면서 공의회는, 그리스도는 혼자이고 분리되지 않는 인격인 반면에 그분은 두 본성으로부터 오실뿐 아니라 두 본성 안에 계시다고 선언하였다. 공의회의 주교들은 로마의 교황인 성 대 레오(461년 안식)의 ‘토모스’(Tome: 문자적으로는 잘라낸 한 부분이라는 뜻. 교회사적으로는 어떤 주제에 대해 특정한 교회의 수장 이름으로 발행하는 결정문 또는 그것을 기록한 두루마리, 작은 책자, 문서를 가리킨다.)를 칭송하였는데, 그 안에는 비록 그리스도의 인격의 일치가 또한 강조되긴 ..

정교회의 역사 2024.02.12

+ 칼리스토스 웨어 대주교의 정교회 역사(2장 비잔티움 I)2

6차에 걸친 첫 공의회들(325-681) 초기 비잔틴 시대에 교회의 삶은 일곱 차례의 세계공의회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 공의회들은 두 가지 과제를 완수하였다. 첫째, 이들 공의회는 알려진대로 다섯 개의 큰 교구 또는 총대주교구의 지위를 확고히 하면서 교회의 가시적인 조직에 대해 명확히 하고 설명하였다. 둘째, 더욱 중요하게 공의회는 성삼위(삼위일체)와 육화(성육신)와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교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확정적으로 규정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들이 인간의 이해와 언어를 넘어서 있는 ‘신비들’로서 여겨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주교들은 공의회에서 (교리에 대한) 정의와 규정을 만들 때, 자신들이 신비를 설명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교리에 대해 말하고 생각..

정교회의 역사 2022.08.16

+ 토마스 홉코 신부의 교회사 5

5세기 내적인 투쟁 5세기초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플이 교회와 제국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각자의 위치에 대해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인 네스토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 ‘테오토코스’(Theotokos)라는 전통적 칭호로써 존경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그는 성모님에게서 나신 분은 영원한 하느님의 로고스가 와서 거하시는 ‘사람’일 따름이지 로고스 자신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을 ‘하느님을 낳으신 분’을 뜻하는 테오토코스로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성 끼릴로스(444년 안식)는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을 강력하게 거부하면서, ‘육신을 따라’ 성모님에게서 나신 분은 바로 거룩한 하느님의 로고스이시기 때문에 성모님..

정교회의 역사 202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