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rue de Lourmel에서 부엌옆 계단 아래에 있는 방을 하나 썼습니다. 한 번은 이곳에서 어떤 방문객이 그녀가 탈진한 상태로 의자에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계속할 수는 없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 것도 섭취할 수가 없다. 나는 지쳤다. 정말로 지쳤다. 오늘 여기에는 각자 자기 자신의 슬픔과 결핍된 것을 지닌 약 40명의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내쫓을 수가 없다.”
그녀는 때때로 결코 다 써서 사라지지 않는 루블화에 얽힌 러시아의 이야기를 생각하곤 했다. 그 돈은 쓰일 때마다 되돌려받은 거스름돈이 1루블과 같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랑도 이와 똑같은 방식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당신이 아무리 많은 사랑을 준다 해도, 사랑이 줄어드는 일은 결코 없다. 사실 당신은 자신이 더 많은 사랑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1루블은 2루블이 되고, 2루블은 10루블이 된다.”
그녀는 두 명의 4세기 성인들, 곧 미라의 니콜라스(270-343)와 요한 카시안(4-5세기)에 관련된 전설을 좋아했는데, 두 성인은 세상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려고 지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우연히 한 농부를 만났으며, 그 농부의 수레가 진흙구덩이에 빠져서 두 성인이 도와주길 간청하였습니다. 요한 카시안은 자기는 곧 천국으로 되돌아가기로 예정되어 있고, 따라서 자신의 예복을 더렵혀서는 안된다고 설명하면서 유감스럽게도 그 요청을 거절하였습니다. 한편 니콜라스는 이미 자신의 엉덩이까지 진흙구덩이에 빠진 채로 수레를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만물의 주관자이신 분께서 니콜라스가 진흙을 두껍게 뒤집어쓴 것과 요한 카시안이 아무런 티도 없이 깔끔한 것의 이유를 아시고나서, 그뒤로 니콜라스의 축일은 해마다 두 번(5월 9일과 12월 6일) 기념하는 반면에 요한 카시안의 축일은 매 4년마다 오직 한 번(2월 29일) 오는 걸로 결정되었습니다.
마더 마리아는 자신이 산상설교(마태오 5-7장)의 첫 구절들(“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에 의해 지탱해나간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구복단(또는 팔복)을 알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간,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비록 암울하고 절망적인 세상에 의해 둘러싸여 있을찌라도 우리가 이미 구복단(또는 팔복)이 약속하는 행복을 맛보고 있다.”
자신의 활동에 대해 설명할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덕이 전혀 아니라고 그녀는 주장하였습니다. “그 안에는 어려움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고통을 덜어주는 모든 것이 내쪽으로 오고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내게 연민과 동정하는 본성을 주셨는데 내가 그밖의 어떤 것으로 살수 있겠는가?”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주는 것에 더하여, 1937년에 다른 수녀가 마리아를 돕기 위해 왔는데, 그녀는 마더 에브도끼아 메쉬체리아코바였습니다. 나중에는 마더 블란디나 오벨렌스카야가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또한 레브 질레 신부도 있었는데, 그분 덕에 성찬예배가 자주 드려졌습니다. 레브 질레 신부는 1938년에 영국 런던을 떠나기까지 마구간 옆의 별채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전례적인 생활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한 서로 상충되는 견해들이 때로는 긴장의 원천이었습니다. 마더 마리아는 예배에 가장 자주 빠지는 사람이거나 또는 일찍 나가거나 늦게 참석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것은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해야할 책무가 더 가중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장에 썼습니다. “경건, 경건이라 말들 하는데, 하지만 도대체 산을 옮기는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고린토 2서 13:2)
자신의 수도생활을 더 전통적인 환경에서 시작했던 마더 에브도끼아는 기질면에서 마더 마리아처럼 실험적이지 않았습니다. 공동체에 수도원장이 없었으므로 두 사람 사이를 조정하고 중재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더 에브도끼아는 비록 언제나 마더 마리아의 인내와 예언자적인 열정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rue de Lourmel에 있는 집은 너무나도 ‘교회적으로 자유분방한 공간’이었습니다. 마더 마리아의 견해는 “전례는 삶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속으로 오신 이유이며, 우리에게 우리의 전례를 주신 이유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1938년 마더 에브도끼아와 마더 블란디나는 Moisenay le Grand에 더 전통적인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마더 마리아는 자신의 실험에 매달렸습니다. “과거에 종교의 자유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외부의 세력에 의해 무너졌다. 러시아에서 우리는 어떤 정권이나 체제도 종교의 자유에 대한 반응으로서 집단수용소를 세울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그녀는 썼습니다. 그녀는 서방으로 추방된 것은 자신의 모국에서 억압에 맞닥뜨렸을 방식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라고 하늘이 보내준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서방에서의 망명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 선물에는 어떤 책임이 뒤따르는가? 우리는 박해의 범위 너머에 있다. 우리는 쓰고, 말하고, 일하고, 학교를 열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아주 오래된 전통들로부터 해방되었다. 우리에게는 거대한 대성당이나 보석으로 장식된 복음경, 수도원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적 환경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우연인가? 이것은 어떤 우연히 일어난 불행인가? 영적인 삶의 맥락 안에서 우연은 없으며, 행복하거나 불행한 시대는 없다. 오히려 우리가 이해해야만 하는 징조가 있고, 따라야만 하는 길이 있다. 우리는 자유로 부름받고있기 때문에 우리의 소명은 위대한 것이다.”
마리아 성녀에게는 (서방으로의) 망명이 그리스도가 가리워진 여러겹의 장식과 먼지로부터 실재적이고 진짜인 것을 해방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것은 첫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던 기회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최고로 중요한 것은 “어떤 규정들, 어떤 관습들, 어떤 전통들, 어떤 미적인 고려, 심지어는 어떤 경건에 의해서도 그리스도가 빛을 잃도록 허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더 마리아가 겪는 어려움들은 때로 그녀로 하여금 끔찍한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매우 우울하다.”라고 그녀는 인정했습니다. “다만 내가 상대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일을 그만둘 수 있다.”
그녀는 주로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에 의해 지탱해나갔습니다. 곧, 두들겨 맞아서 부서진 사람들, 절망하는 사람들, 불구자들, 알코올 중독자들, 병자, 많은 비극에서 살아남은자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신뢰에 대해서 신뢰로 응답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둑은 드문게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손님이 25프랑을 훔쳤습니다. 모두들 누가 범인인지(한 마약중독자)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마더 마리아는 그녀를 비난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대신에 마리아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 돈은 누가 훔쳐간 것이 아니라 그저 잘못된 장소에 있었고 자신이 그것을 찾았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남을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보셨죠?”라고 그녀는 언급하였습니다. 곧바로, 돈을 훔친 소녀가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남에게) 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더 마리아는 말하곤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만일 잘못이 저질러지고, 만일 사람들이 믿음을 배반하면, 치유(治癒)는 주는 것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실수나 잘못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마더 마리아와 그녀의 협력자들은 궁핍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문을 두드릴 때 단지 문을 열었던 것이 아니라, 집없는 노숙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곤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는 한 장소는 르 할레(Les Halles)에 있는 밤샘 카페였는데, 그곳에서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와인 한 잔 값만 내고는 원하는만큼 오래도록 앉아있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들 또한 돌봄을 받았습니다. 여러 곳에서 시간제로 주일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공동체에는 다행스럽게도, 때때로 일어났던 것처럼 신뢰를 받던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을 조직적으로 훼손하는 경우에 그들의 신중한 영업지배인 페도르 피아노프(러시아 기독학생운동의 전 사무총장)가 가끔씩 개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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