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악마에 대한 새로운 정교의 신념은 그것이 보잘것없고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메피스토펠레스(J. W. 폰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 유혹자)의 장엄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은 우리에게 낯섭니다. 악마는 우뚝 솟아있는 고상함이나 고결함이 아닙니다. 그는 썩 뛰어나지는 않은 평범함이며, 보잘것없이 작고 하찮은 것입니다.
68. 신지학(神智學, theosophy), 신비학(오컬티즘. 물질과학으로 설명할수 없는 ‘숨겨진 지식’을 탐구하는 학문), 심령주의(spiritualism)의 실천은 정신건강에 대한 그것의 영향면에서 해로울뿐 아니라, 그 근거와 기반으로서 닫혀진 문을 통해 들여다보려는 부정한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비의 실존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며, 엿듣기 위해서 뒷계단으로 빙 돌아 빠져나가려고 해선 안됩니다. 더욱이 우리는 하느님께로 우리를 곧바로 인도하는 최고인 생명의 법, 곧 힘든 가시밭길인 사랑을 받았으므로 우리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샛길로 새는 일없이 사랑을 따라야만 합니다.
69. 우리의 친구와 친척들의 죽음은 무한하신 하느님에 대한 우리 신앙의 경험적 확인을 제공해줍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에 대한 긍정입니다. 죽어가는 이와 함께 하면서, 우리는 환상의 세계와 진짜로 실재하는 세계라는 두 세계를 나누는 경계에 다다릅니다. 죽음은 우리가 환상이라고 여겼던 것의 현실성과 실재라고 생각했던 것의 공허한 비현실성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70.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를 부인하고, 그분의 아들이길 거부하는 사람은 진짜 사람이 아니라 성장과 발달이 방해를 받아 손상된 사람이며, 한 인간으로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계획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의 선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만이 아니라 과제로서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며, 의식적으로 그리스도이신 하느님을 옷입음으로써 이 과제를 성취할 때에만 각 인간의 인격성이 완전하게 드러나고 꽃을 피우는 데로 이끌 수 있습니다.
71. 죄는 파괴적인 힘이며, 무엇보다도 먼저 그 죄의 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을 파괴합니다. 죄는 사람의 얼굴을, 그것도 심지어는 육체적인 면에서 일그러뜨리고, 어둡고 우울하게 만듭니다.
72. 우리 자신 안에서 우리를 가장 위협하고 놀라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감각함과 영적인 게으름과 실명(失明) 상태입니다. 죄로 인해서 고통과 회한(悔恨)이 일어나고, 참회와 뉘우침과 용서에 대한 갈망을 영혼이 느껴야만 합니다! 하지만 대개 우리는 아무런 것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삶은 마치 모든 것이 세상과 함께 올바르고 괜찮은 것처럼 우리 주위로 지나갑니다. 아마도 이런 무관심은 정확히 죄에서 생겨난 영적인 파국(破局)의 결과입니다.
73.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쇠퇴하고 늙은 것을 바라보는 것은 종종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인간적이고 육체적인 수준에서 우리 인격의 이런 쇠잔(衰殘)함과 퇴락(頹落)은 우리 안의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축복받은 영적 힘을 위한 길을 열어줍니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 안에서 놀라 실망하며 바라보게 되는 쇠퇴와 하락, 위축과 저하(低下)는, 곧 밝게 빛나는 눈동자와 붉은 색의 뺨, 깊고 감미로운 음성의 쇠락(衰落) 등 모든 것은 그저 우리의 자연적이고 물질적인 본성의 쇠퇴일 뿐이며,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외적인 인간이 부패하면 부패할수록 내적인 인간은 더욱더 새로이 태어납니다. 만일 이런 일이 일어나서, 늙어가는 과정이 대신에 우울증이나 노령(老齡)에 대한 두려움, 영적인 질의 저하와 악화에 이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74. 순종의 혜택과 이점은 군대나 수도원, 가족(남편과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안에서처럼 외적인 생활이 누군가에 의해서 탈취(奪取)되고 장악될 때 내적인 것을 위해서 영혼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75. 수도생활과 결혼한 상태의 삶이 있습니다. 셋째 상태, 곧 세상 속에서 동정으로 사는 삶은 극도로 위험하고, 유혹으로 가득 차며, 대다수 사람들의 힘을 넘어섭니다. 게다가 이런 상태의 삶을 고집하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자기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위험입니다. 동정의 기운(아우라)과 미(美)는, 직접적인 종교적 의미를 빼앗겨버렸을 때 어떤 의미에서는 ‘결혼생활의 깃털’같은 것이며, 강력한 매력을 행사하고, 볼썽사나운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저자: 알렉산더 V. 엘카니노프 신부(+1934년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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