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9

나는 적합한가?

나는 적합한가? (+안토니 M. 코냐리스 신부[1926-2020]의 ‘하루의 비타민’에서 옮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좋은 질문은, “만일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나는 하늘나라에 알맞은 사람일까? 내가 쓰는 언어는 하늘나라에 어울릴까? 내 태도는? 내 습관은 하늘나라에 적합할까?”입니다. 언젠가 그 날이 오면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부활시키실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해 하늘로 올라갈까요? 아니면 여러분의 일생에서 하느님이 중심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과 죄가 중심에 있었기에, 그분을 등지고서 아래로 내려가 그분이 없는 곳에서 영원히 머무르게 될까요? 지금은 바로 예수님이 여러분을 죄와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시키시도록 해야 하는..

대사순절 2024.04.13

어느 러시아인 사제의 일기 12

44. 믿음은 사랑 안에서 시작되고, 사랑은 관상 안에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그분을 본다면, 그분에게서 우리 눈을 뗄 수가 없을 것이며, ‘황홀경 속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수많은 군중이 그랬듯이 우리는 그분 주위로 떼를 지어 몰려들 것입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저항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분께, 복음서와 성인들과 교회 안에서 그분의 모습을 관상하는 것에 굴복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의 마음을 소유하실 것입니다. 45. 성인들의 생애를 읽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각양각색의 성인들의 삶 속에서 드러난, 하느님께로 이르는 무한히 다양한 길의 영역 안에서 우리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태도를 판단하는 기준

죽음은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가늠하는 기준(시금석[試金石])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삶을 두려워합니다. 누군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 모든 복잡함과 위험을 지닌 삶을 두려워하지 않기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호화롭고 사치스런 일[호사 豪奢]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결코 궁극적인 모험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것이며, 겁많고, 소심하고, 용기가 없는 태도로 우리의 인생을 허비할 것입니다. - 안토니 블룸(1914-2003, 영국 수로즈의 대주교)

어느 러시아인 사제의 일기 9

25. 내 자신과 나눈 대화에서: 왜 당신은 이것에 대해 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매우 매우 중요한데. 그것이 정확히 어떤 중요한 것에 대한 저의 사고방식입니다. 모든 작동되는 기능을 잘 정리하십시오. 그러면 대답이 자동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무슨 말로 어떻게 항변할까 걱정하지 말라”(루가 12:11) 26. 제게는 우리 삶의 길에 있는 가시와 엉겅퀴가 특별히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기 위해 하느님이 마련하신 것으로 자주 여겨집니다. 저는 저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삶 속에서 이것을 절대적으로 분명하게 보고 있습니다. 27. 고백성사때, 희미하고 약한 기억은 변명이나 핑계일뿐입니다. 망각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진심어린 마음이 없을 때, 그리고 죄에 대한 무감각과 무관심에 의해 생겨납..

어느 러시아인 사제의 일기 5

10. 무엇이 우리의 영적인 힘을 증가시키는가? (싸워서) 극복된 유혹입니다. 11. 유한한 존재인 우리 안에 있는 무한한 것, 곧 사랑의 현존이 무한하신 분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죽음을 갈망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12. 이토록 어두운 우리의 삶 속에서조차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며, 도리어 그분은 우리의 기도 속에서, 신비의 성사 속에서,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분이 우리와 친교를 나누신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13. 삶은 값지고 아주 특별하며 고유한 선물이지만 우리는 어리석게도 부주의하게 삶을 낭비하며, 삶의 덧없음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그리워하고 동경하면서 뒤돌아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삶이 실제로 시작될 것처럼 보이는 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