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성화 논쟁의 끝 거룩한 성화에 대한 공경이 정식으로 교회 안에서 지지를 받은 787년의 공의회에 뒤이어서, 다시 한 번 더 성화(이콘)에 대한 공경과 공경자들 모두를 공격한 새로운 제국의 통치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리니 여왕이 802년에 죽자, 아르메니아인 레오가 황제가 되었습니다. 815년에 그는 교회에서 성화를 신자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어, 신자들이 성화를 공경하거나 그것에 입맞추지 못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815년의 성지주일에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위대한 스투디오스(Studios) 수도원의 원장인 성 떼오드르는 성화를 든 채로 거리를 행진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 행진은 황제의 공격과 고문, 살인을 낳았습니다. 오로지 843년에만, 떼오도라 왕비가 주도권을 갖게 되자 메토디오스 총대주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