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의 역사

칼리스토스 웨어 대주교의 정교회 역사(서론 2)

ttoza 2021. 1. 19. 09:47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 있는 정교회 대성당에서 거행된 장례식에 참석한 주교들(2021년 1월 7일)

 

코미아코프가 1846년에 편지를 썼을 때, 사실 (동방과 서방) 양쪽에는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 서로를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1830년대에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필사본 등을 찾아 레반트(Levant: 소아시아와 고대 시리아 지방의 지중해 연안지방. 일반적으로는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 중동의 일부지역을 가리키는 지리적 용어. 역자주) 지역을 여행하던 로버트 쿠르존(Robert Curzon: 1810-1873. 영국의 여행가, 외교관, 작가. 근동지역에서 활동함. 여러 가지 중요한 성서사본을 정교수도원에서 획득하였다. 역자주)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캔터베리의 대주교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이후로 이같은 상황은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여행은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쉬워졌으며, 물리적인 장벽은 사라졌습니다. 또한 여행이 더 이상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서방세계의 시민은 정교회를 직접 보기 위해 더 이상 자기 자신의 나라를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 원해서든 또는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서든 서방으로 여행하는 그리스인들과 박해 때문에 서방으로 내몰린 슬라브인들이 모든 유럽지역과 북미, 호주 등에 교구와 지역성당, 신학교와 수도원을 서로 연결하는 조직을 세우면서 자신들의 교회를 옮겨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20세기에 수많은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의 교회들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가시적인 일치를 향한 강력하고 전례가 없는 열망이 생겨났으며, 이로 인해 정교회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성되었습니다. 서방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의) 재결합에 대한 관심 속에서 정교의 관련성을 의식하게 되고, 더불어 정교에 대해 더 배우고자 갈망하게 되던 바로 그때에 그리스인들과 러시아인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 특정민족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역자주)가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교회의 일치와 재결합을 위한 토론에서 정교회의 공헌은 흔히 예상치 못했던 빛(이해를 돕고 문제의 본질을 분명하게 밝혀주는)으로 드러나곤 하였습니다. 이것은 정확히 정교인이 서방과는 다른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신선한 사고방식을 펼쳐보일수 있었고, 옛날의 난제에 대해 오래도록 잊혀진 해결책을 제시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방에도 그리스도교 전체를 캔터베리와 제네바, 로마에 국한하지 않고 이해했던 사람이 언제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그런 사람은 광야에서 울부짖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900년이상 지속되어온 (동방과 서방간) 소외와 단절의 결과는 빨리 무효화할수 없으나, 적어도 시작은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