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의 역사

칼리스토스 웨어 대주교의 정교회 역사(1장 시작) 1

ttoza 2021. 5. 13. 18:47

 

성 테클라 지하무덤(카타콤)[키프로스]

 

1: 시작

 

마을에는 땅속으로 깊게 판 소성당이 있으며, 그 입구는 조심스럽게 위장되어 있었다. 몰래 한 사제가 마을을 방문하였을 때, 성찬예배와 다른 성사들을 집전하는 곳은 바로 여기이다. 이런 경우 만일 마을사람들이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나 안전하다고 믿게되면, 낯선 사람이 나타났을 때 미리 알려주기 위해 바깥에 남아있는 보초만 제외하고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소성당 안으로 모여든다. 다른 때에는 장소를 바꾸어서 예배가 이루어진다...”

 

부활절 예배는 공식적인 국가 기관의 방에서 이루어졌다. 특별한 허가증을 가진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었으며, 나는 내 자신과 어린 딸을 위해 허가증을 받아두었다.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으며, 그들 가운데는 내가 아는 사람들도 몇이 있었다. 한 나이든 사제가 예배를 집전하였는데, 나는 그 예배를 결코 잊을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네라고 나지막하게, 하지만 엄청난 기쁨으로 노래하였다... 마치 초대교회의 지하무덤(카타콤) 교회와 같은 곳에서 드려진 예배에서 느낀 기쁨으로 말미암아 나는 오늘까지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위의 글들은 2차 세계대전 직전에 러시아에서 있었던 교회생활을 묘사한 내용이다. 하지만 만일 조금만 내용을 고친다고 하면, 그것은 어렵지않게 네로나 디오클레티안 (황제) 치하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예배하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여겨질수 있을 것이다. 위의 글들은 1900년동안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서 지나온 길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보다도 초대교회에 훨씬 더 가깝게 서있다. 그리스도교는 대부분의 사람이 비그리스도인인 사회에 존재하는 작은 소수집단의 종교로서 시작하였으며, 이제 다시 한번 더 그렇게 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초기에 국가로부터 분리되어 뚜렷이 구별되는 별개의 조직이었다. 그리고 이제 한 나라에서 또 다른 나라로 하나하나 보았을 때, 교회와 국가 사이의 전통적인 동맹과 연합은 끝나가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처음에 금지된 종교’(religio illicita)였으며, 정부에 의해 박해를 받는 종교였다. 오늘날 박해는 더 이상 과거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이후 300년 동안보다도 1918-1948년 사이의 30년 동안에 신앙을 위해서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었던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특별히 정교회 교인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아주 잘 인식해오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 대다수가 반그리스도교적인 공산주의 정부의 지배하에서 아주 최근까지 살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순절(성령강림)의 날부터 콘스탄티노스 황제의 회심에까지 이르는 그리스도교 역사의 첫 시기는 현대의 정교와 특별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